잉카제국은 일게이들에게도 마추픽추, 피사로의 만행등으로 유명한 제국이야.
비록 마야에 비해서는 네임벨류가 떨어지는 느낌이지만.
그럼, 잡설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1.잉카제국 성립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
기원전 10000년경 동양인들이 얼어있던(당시에) 베링해협을 건너서 아메리카 대륙에 점차 흘러들어오기 시작해.
많은부족들이 흘러들어왔지만 대부분은 미국 중부지역에는 케치탄족(후에 이로쿼이를 세움) 쿠엣틀족(평원인디언) 등등이 정착했고
멕시코지방에는 마야족과 치무족, 나스카족등등이 정착을해.
잉카제국을 세운 잉카족은 여러섬들을 떠돌아다니며 살기좋은 땅으로 점차이동하기 시작해.
기원전 2000년경에는 올멕족이 아메리카에서 두각을 보여.
얼마전 이집트에서 올멕족이 만든것으로 보이는 담배와 옥수수가 발견되서 고대에 이미 아메리카-아시아 무역이 완성된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
올멕족은 마야문명의 조상격으로 후에 여러부족들과 합쳐서 마야제국을 탄생시켜.
짤은 올맥족의 지도자를 돌로 표현한것.
기원전 500년경, 여러 부족들이 세력을 키우면서 엑윽엑엑할때 혼자만 난생처음보는 건물을 짓고 혼자 문명인 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었어.
바로 치첸이트사로 유명한 마야문명이지. 마야문명의 등장은 아메리카역사의 일대 혁명이였어.
놀라울정도로 정교한 건축실력에 산술, 하수도시설, 정부체계를 자랑하는 이들은 곧 많은 아메리카부족들의 모티브가 된다.
마야는 달력을 계산했고, 지구의 둘레를 거의 비슷하게 알아냈으며 통일된 숫자와 언어를 가지고있었고 수많은신전과 건축물을 가진
큰도시들을 여러개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인류역사상 최고의 제국중 하나였던 로마에게도 최후가 다가오듯이, 마야문명또한 쇠퇴기를 맞이하기 시작했어.
기원후 300~600년까지 중앙아메리카의 여러부족들을 통솔하며 소위 봉건군주제체계를 갖추던 마야문명이 멸망한이유는 아직 알수없어.
많은학설중에서 그나마 믿을만한것은 봉건군주제의 약점인 왕건약화로 인한 연쇄적 독립전쟁, 그리고 식량부족으로 인한 대규모반란 등이 있어.
그외에도 외계인에게 멸망당했다던가, 땅속에 생매장당했다던가 하는 허무맹랑하고 재미있는 학설들도 많으니 관심있으면 찾아보는것도 좋을듯.
논외로, 1500년경 마야 재건축을 표방한 신마야문명이 나오지만, 이글과는 상관이 없으니 다음번에 써볼게.
마야 이후에도 잉카문명이 세워질쯔음에 많은부족들이 국가를 세웠지만 작은 부족국가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그나마 멕시코지방에서는 커다란 제국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후에 아즈텍제국에 의해 기록이 불타고 건축물이 파괴되서
제대로 알수있는 정보가 적어...
2. 잉카의 등장
잉카문명의 초대 군주는 망코 카파크야.
망코 카파크는 마야제국을 발전시키고 쿠스코에수도를 건설한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성격이 병신같기로도 유명했지. 다행이 자기 후손을 자기손으로 찍어뒀기 때문에 왕권다툼은 일어나지 않았어.
잉카는 이렇게 작고 평화롭게 등장하지.
2대왕 신치로카는 안데스 산맥일대를 장악하면서 점차 제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해. (하지만 이때까지는 촌구석 부족국가중 하나였을 뿐이야)
신치로카 이후에 왕위를 물려받은 3대 요케 유팡키는 못생긴걸로 한가닥 했어.
그가 얼굴을 들어낼때면 사람들이 도망을갔고 첫째부인은 성관계를 거부해서 둘사이에 아기가 없었어.
결국 이웃부족의 부족장의 딸과 결혼을 하는데, 딸은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흘렸고,
부족장은 울부짖는 딸을 강제로 혼인시켰어.
이후 둘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못생겼다"라는 이유로 맏아들 임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동생에게 뺏겨......(ㅠㅠ)
이후 마이타 카파크, 카파크 유팡키 등의 지도자들은 내부안정을 도모하면서 점차 군사력을 키우면서 이를 갈고 있었어.
제2왕조(위에서 말했다시피 유팡키의 아들이 너무 못생겨서 왕위가 동생에게 넘어감. 이때부터 제2왕조 시작)
의 초대왕인 잉카로카 는 조상인 요케 유팡키와는 달리 달리기도 빠르고, 키도크며 얼굴도 꽤나 미남이였는데,
어느날 이웃부족장의 딸과 스캔들이 나. 근데 그 부족장의 딸은 이미 다른 부족의 왕자와 결혼을 신청받았기 때문에 점차 잉카와 왕자의 부족사이에는
갈등이 일어났어. 결국 잉카로카와 이웃부족의 미녀딸은 결혼을하고 많은 아이를 낳아.
이에 빡친 이웃왕자는 잉카로카의 둘째아들을 몰래 훔쳐가.
당연히 로카는 화가놨어. 하지만 당시 잉카는 안데스산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ㅆㅎㅌㅊ 깡촌문명이였기 때문에 이렇다할 소리도 못하고
왕자쪽에서 아이를 돌려줄때(10년이후)까지 입닥치고 있어야만 했어.
이런 병신문명이 아메리카를 지배하는데에는, 9대 왕이였던 피차쿠티의 공이 컸어.
잉카로카 이후에, 야와르 와칵과 비라쿠차를 지나서 9대째 황제인 피차쿠티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잉카는 안데스산맥을 넘어서 정복활동을 하기 시작해.
그는 왕이되기전에 자신의 아버지인 비라쿠차와 왕권싸움을 했지만, 비라쿠차가 어느날 갑자기 의문사 하는바람에 비교적 쉽게 왕권을 거머쥐어.
당시 이미 제국을 건설한 창카족과 영토를 넓히려던 잉카족이 자주 충돌했는데, 피차쿠티는 창카족을 어떻게 부술까 고민을 하다가,
창카족을 직접공격하기 보단 창카족의 뒷통수 부분에 살던 원주민들을 항복시켜서 땅을 얻은후에, 창카족을 포위해서 ㅁㅈㅎ시켜.
이 전쟁으로 인해 잉카는 본래영토보다 2배가량 많은 영토를 얻을수 있었어.
피차쿠티는 그외에도 수도 쿠스코와 여러 지방을 잇는 왕도(王道)를 건설하고, 근대적인 정부체계와 군대시설을 도입해.
그가 지은 고속도로는 이후 200년동안 세계에서 손에꼽는 포장도로였어.
여담으로, 문명에 나오는 파카쿠티는 피차쿠티의 영어 발음이야.
이후 잉카는 피차쿠티가 야심차게 건설했던 고속도로 덕분에 빠르게 전쟁물자를 옮길수 있었고,
당시 엑윽엑엑 하면서 돌팔매질 했던 미개부족들에게 맞서 마야식방진(10x10 에 100명을 1군으로 사이간격을 넓게 가지며 아틀라스나
척후병,등을 제일 뒷째줄에 배치하여 원거리 공격을 하면서 돌진하는 것)을 도입했어.
그덕에 잉카는 빠른속도로 영토를 넓힐수 있었지.
근대적 군주였던 피차쿠티가 1474년 죽고, 그의 뒤를이어 10대왕 투팍 잉카 유팡키가 등장해.
투팍잉카 유팡키때는 경제적으로는 무역의 중심지임을 자칭하여 "쿠스코에서는 황금으로 화장실을 만든다"라는 유머아닌 유머가 떠돌았을 정도로
잉카는 부유해졌고, 정복지 곧곧에서 선교활동을 위한 신전이 생겼어. 당연히 신전사이사이를 잇는 고속도로또한 건설되었고,
의도치 않게 잉카의 고속도로는 점점 완성도를 더해갔어.
무엇보다 잉카 유팡키의 가장큰 업적은 바로 "왕권강화"였어 그는 지방귀족들을 강제적으로 쿠스코관리가 되게했고,
내적으로도 스스로를 황제라고 부르고 잉카를 잉카제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해.(잉카어로 황제는 "사파 잉카")
이렇게 "황제선언"으로 인해 잉카는 제국이 되었고, 그의 뒤를 이은 와이나 카파크는 본격적으로 원정을 준비해.
그는 사실 멕시코지방으로 진출하고 싶어했지만, 전쟁중에 뒤통수를 우려해 안데스산맥 이남지방을 점령해.
그후 북쪽지방으로 칼날을 돌렸지만.... 아쉽게도 너무빨리 죽고 말았어...
와이나 카파크 황제는 교육제도와 5정 체재(외교부,군부,정치부,무역부,종교부)를 잉카에 적용시켜.
3.잉카의 황혼기와 멸망
와이나 카파크황제의 첫째아들은 천연두로 인해 사망하고, 우아스카르가 왕위에 올랐지만,
평소 우아스카르에게 불만이 많았던 이복동생 아타우알파가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우아스카르는 패배하여 왕좌에서 쫓겨나.
아타우알파가 13대왕에 올랐을때는, 갑작스레 찾아온 천연두와 기나긴전쟁, 그리고 정체를 알수없는 존재가 다가온다는 소문(피사로 일것으로 추정)
으로 장내가 뒤숭숭했고, 거기다가 잉카가 자랑하던 무역규모도 멕시코지방의 아즈텍제국에 밀리면서 잉카는 경제적으로도 곤란을 겪게되.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어.
하얀얼굴에 큰키와 넓은어깨를 가진, 이상한 사람들이 잉카제국에 도착했던거야.
역사적으로도 해방자와 학살자(요즘은 학살자라는 쪽이 더 많은듯)라는 서로다른 평가를 받는 피사로가 소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잉카의 수도에 도착했어.
황제였던 아타우알파는 신하들에게 그에관한 정보를 물었지만, 왕이 두려워할것을 우려했던 신하들(혹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은
거짓말을 둘러 댔어.
총을 부싯돌로, 대포를 가마로, 말을 큰 라마(남아메리카에 사는 동물)로 표현하면서 걱정하지말라고 했어.
이말을 덜컥 믿어버린 아타우알파는 호위병 겨우 1만을 데리고(그마저도 제대로된 무기하나 안 가지고) 마차에도 타지 않은체
걸어갔어.....
요시! 운지시즌!
아타우알파가 스페인침략자들 앞에 모습을 들어내자, 피사로는 대화를 요청하며 아타우알파 황제 혼자서만 다가오라고 말했어.
순진한 아타우알파는 순순히 다가갔고, 피사로는 성경책을 주며 선교를 했어.
오랫동안 선교가 계속되자 실증이 나버린 아타우알파는 성경책을 땅에 던져버렸고, 그순간 말을 탄 기병들이 무장해제를 하고있던
잉카군의 심장을 창으로 꽤뜷었어.
광장에 대포를 쏘아 잉카군들을 학살하였고, 평소 잉카에 불만이 많던 창카족과 테누탄족의 병사들이 검을들고 잉카군을 후려치기 시작했어.
사방에서 수많은 야만족들이 창칼을 들이대고, 난생처음보는 물건에서 엄청난 불이 뿜어져나오는것을 보고 놀란 잉카군은 급격히 와해되기 시작했어.
아타우알파는 저항하나 못하고 잡혀버렸고, 방심하여 검,방패 하나 들고오지 않았던 잉카군은 사실상 양민학살을 당했어.
아마 사람들은 말할꺼야. "아무리 그래도 1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그렇게 씹털리지?? 병신들인가"
하지만 시대적상황으로 잉카군사 내에서도 아직까지 우아스카르를 지지하고 아타우알파에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고,
거기다가 왕의 명령으로 칼하나 안가져왔고, 난생처음보는 무기에 동료들이 속수무책으로 살해당하고, 거기다가 군주의 생사마져도 확인할수 없었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야. 만약 아타우알파가 조금은 신중했던 성격이였다면, 만약 스페인군이 20년만 일찍 잉카에 왔더라면...
충분히 역사는 바뀔수 있지 않았을까?
피사로는 아타우알파를 감옥에 가뒀고, 아타우알파는 피사로에게 "만약 나를 살려준다면 황금으로 이 감옥방을 가득 채워주겠소"라는 명언을 하지.
피사로는 즉시수락했고, 아타우알파는 감옥을 은과 금으로 찬란하게 장식해줬어.
하지만, 피사로의 입장에서 아타우알파를 살려둔다면 반란운동의 구실점이 될지도 모르는것이였고, 결국 아타우알파를 죽이기로 결심해.
아타우알파는 배신당했음을 알고 후회의 눈물을 흘렸지만, 마음을 고치고 죽기전에 한가지 조건을 걸어.
그것은 자신이 죽은후에 잉카식미라로 만들어 영구히 보존해달라는 작은 부탁이였어.
하지만, 피사로는 이 마지막부탁 마져도 처참히 짓밟아 버리고 말지.
수많은 식민지들이 겪었던 비애처럼, 잉카제국의 시민들또한 노예가되어 세계방방곡곡으로 흩어졌고,
처음보는 낯선땅에서 죽음에 임박할때까지 노동을 해야했어.
수많은사람들이 소금광산과 탄광촌에 끌려가고, 태양의 후손임을 자처하던 과거의 영광은 이제는 엿볼수조차도 없었어.
수도 쿠스코는 피사로에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수많은 잉카인들은 자살을 결심했어.
이를 지켜보던 쿠스코의 한 사제는 이러한 말을 남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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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친구들이, 우리의 백성들이 태양신의 제물로 죽어나갈때,
우리의 목숨과 수많은 금은보화가 그대들의 손으로 사라졌을때,
우리는 수많은 역경을 딛고 제국을 만들었고
이제 또다시 크나큰 역경이 우리를 기다린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실망하지 않겠다고 맹새한다.
우리의 후손들이 칼과 책을 부여잡아
쿠스코 언덕에서 태양을 바라보며 대찬함성을 지르고,
다시한번 영원히 빛날 태양을,
세월의 흔적에도 무너지지않는 영혼불멸의 존재를 창조할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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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줄요약
1.잉카제국 이전에 올멕족,마야제국이 있었음
2.마야제국 망하고 1200년경에 잉카족이 등장
3.피차쿠티 짱짱맨, 유팡키 짱짱맨
死.내분으로 운지, 반란으로 운지, 천연두로 운지, 그리고 피사로에게 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