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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16세기 들어서 10kg이나 되서 사격할 때마다 지지대 받치고 쏴야했던 머스킷이 4kg으로 경량화되면서

서유럽에서는 머스킷총병이 기병을 제치고 전쟁의 주역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어. 

일단 석궁, 장궁에 비해 양성하는 비용이 훨씬 싸게 먹힌데다가 관통력도 쓸만했고.

무지렁이 농민이라도 교육시켜 쥐어주면 손쉽게 귀족기사를 죽일 수 있었으니까.

물론 보호받지 못한다면 재장전하는 사이 닥돌한 기병들의 밥이었지만.

 

 

1. 육지의 아르마다, 테르시오 전사

 

테르시오는 1704년까지 200여년 동안 스페인 육군이 체택한 편제야.유럽전쟁사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놈들이지.

이 군사혁신으로 이전까지 기병에게 쥐어터지던 머스킷 총병이 당당하게 전장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스페인의 ㅆㅅㅌㅊ 장군인 코르도바가 창안한 진형인데 머스킷총병의 비율은 약  30%정도.

근접전에 능한 장창병으로 강한 화력을 지닌 머스킷 총병을 사각으로 둘러쌓아 보호해서 수비와 공격 모두 효과적이었어.

 

 

카톨릭 안믿겠다고? 그럼 넌 ㅁㅈㅎ야 ㅎㅎ

 

불과 수백명으로 아즈텍과 잉카를 ㅁㅈㅎ시킨 콩퀴스타도르가 바로 요놈들이야.

오죽하면 200년 동안 테르시오는 유럽에서 대적할 자 없는 무적의 군대라고 불렸겠냐.

하지만 1643년 유럽짱깨와 한판붙은 로크루아전투에서 왕창 깨지면서 이 군대의 명성도 끝이 나버려. 

 

 

 

 

2. 라인배틀의 시초, 마우리츠 총병대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영웅인 마우리츠 공작이 조직했어.

이 보병대는 테르시오의 사각방진과는 정반대로 일직선으로 길게 늘어선 진형이야. 

머스킷 총병의 비율이 50%나 됬는데 테르시오의 총병비율이 28% 정도인 걸 감안해보면 마우리츠도 어지간한 화력덕후였나보다.

하긴 숫적으로 밀리는데 화력이라도 우월해야되지않겠노...

우리가 흔히 라인배틀이라 부르는 종대사격전술의 시조뻘쯤 되겠다.

 

 

윗쪽이 마우리츠식 직선진형, 아래가 테르시오식 사각방진. 딱! 차이가 보이盧?

 

테르시오가 공격과 수비의 조화를 적절하게 혼합했다면 이쪽은 화력의 극대화를 노렸어.

보통 테르시오 총병이 3열 교대사격 이었는데 마우리츠 총병대는 최대 16열...ㄷㄷ해 

아직 총검이 실용화되지 못한 때라 사격을 퍼부은 뒤 장창병들이 닥돌해서 마무리를 지었어.

순간폭딜이 엄청났지만 테르시오와 달리 길게 늘어선 탓에 기병대가 옆구리 치면 걍 쓸려버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3. 소수정예화의 표본, 구스타비안 전술 보병

 

북방의 사자 혹은 근대전술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구스타브 바사가 고안해냈다.

최초로 '통일된 군복'을 도입해서 병사들의 단결심과 사기를 높였지.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유럽정예라는 테르시오조차 군복이 통일되지않아 제 각각이었다.)

기본적인 전술은 마우리츠의 개량버전이야.

대오를 3열로 나눴는데 선두 1열에 무릎쏴 자세를 도입해서  순간화력을 좀 더 극대화시켰어. 

 

 

1중대당 300명, 10개 중대로 편성되는 종래의 편제와 달리 구스타비안은 1중대당 150명, 8개 중대로 규모가 줄었다.

 

또 다른점이라면 연대의 기본단위가 3천명에서 1200명으로 대폭줄었다는 것?

이전까지 장교/하사관의 비율이 부대 전체의 5% 정도인데 반해서 구스타비안은 15%.

3배나 늘어났지? 군필게이들은 더 잘알겠다만 전시상황에서 부대를 운영하는 간부의 역할은 결코 비중이 적지않아.

사병을 줄이고 간부를 늘인 덕에 구스타비안은 신속한 명령하달과 기동이 가능했지.

스웨덴군은 30년 전쟁에 신교측으로 참가해서 그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고 유럽 선진군대의 모범이 되었다.

 

 

 

 

4. 진형브레이커, 하이랜더 연대

 

머스킷총이 발명되기 이전, 스코틀랜드인들은 클레이모어라는 양손검이나 배틀엑스같은 도끼를 닥돌하는 돌격전법을 선호했어.

그런데 점차 유럽전쟁의 추세가 근접전에서 멀어져가니 전법을 바꾸지않을 수가 없잖아?

1640년 개발된 하이랜더 차지(Highlander charge) 전술은 그들의 전통을 매우 잘살렸다고 볼 수 있어.

사실 전술이고 자시고까지할 거 없이 존나 간단해.

한손에는 머스켓을 발사, 다른 손에는 한손 클레이모어나 도끼를 들고 돌격해서 근접전으로 상대를 유도한 뒤 뼈와 살을 분리.

ㄷㄷ 한손에는 머스킷, 한손에는 대검or도끼. 상마초남들이盧? 

 

 

 

 

어쌔신크리드4에 등장하는 하이랜더

일단 하이랜더측도 머스켓이 있으니 돌격하다 전멸할 일은 적고, 무엇보다 상대방은 하이랜더의 접근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그런 상태에서 이 치마입은 마초맨성님들이 우워어어~함성을 지르며 개닥돌해서 진형 자체를 박살내고 난전으로 가는 거야.

하지만 상대측이 잘 훈련되어 있다면 오히려 역관광 당하는 게 함정..

 

 

 

 

 

5. 라인배틀의 완성, 프랑스 총사대

 

1661년, 태양왕 루이 14세가 친정을 시작한 이후 육군은 30만으로 증강되었고 프랑스는 유럽의 깡패로 거듭났어.

특히 프랑스 총사대는 수비를 깨부수는 강한 공격과 높은 사기로 유명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라인배틀 전술을 완성시킨 것이 바로 루이 14세의 프랑스 총사대야.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보였는데 바로 총검의 보편화였지.

 

 

그나마 있었던 장창병이 완전 노짱따라가버렸盧....

 

물론 이전에도 총구에 끼워넣는 초기형태 총검이 있기는 했어.

하지만 적을 찌른 뒤 검이 빠져버리거나 총구에 박아넣어서 사격을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널리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끼워넣는 플러그식 총검이 개발되면서 사정이 달라져.

장창병의 존재이유가 근접전에 취약한 총병을 지키는 것인데 이제 총병이 근접전도 할 수 있으니 필요가 없잖아?

장창병은 서서히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17세기 말쯤 되면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6. 훈련은 실전처럼, 레드코트

 

올리버 크롬웰 이후, 영국의 군복은 계속 변천했지만 군복색깔은 주욱 붉은색이였지.

왜냐하면 붉은색 염료인 코치닐 가격이 존나 쌌거든. 이들은 빠른 재장전 속도와 연사력, 정확도로 유명해. 

당시 일반적인 머스킷 사수가 해봐야 1분에 2발인데 레드코트는 1분당 최대 5발까지 사격이 가능했어.

그도 그럴게 딴 나라들이 화약은 물론 부싯돌조차 아까워서 총에 나무조각 끼워넣고 입으로 탕탕~소리내며 훈련할때 레드코트는 실탄으로 훈련함.

(프로이센같은 일부 예외를 빼고)

덕분에 유럽에서 숙련사수로 그 명성을 떨쳤지.

 

 

 

레드코트의 강철멘탈은 간부의 채찍질과 선임들의 갈굼으로 만들어진다. 

 

앞서나온 프랑스 총사대는 먼저 두들겨서 기선제압!하는 방식을 선호했는데.

레드코트의 기본전술은 한대맞고 접근해서 두대친다!였어. 왜 호구같이 쳐맞아주노? 하는 게이들도 있을거야.

당시 머스킷 정확도가 ㅎㅌㅊ라 전진하는 동안 희생자는 얼마안됬고 설사 적앞에 도착해서 먼저 맞아줘도 문제는 없었어.

사격을 끝낸 적이 재장전하는 동안 레드코트는 빠른 재장전속도와 높은 정확도로 적을 붕괴시켰지.

나중에가면 오히려 레드코트 지휘관이 우리는 신사니까 당신들이 먼저 쏘시오~라 할 정도. 

 

 

 

 

  

7. 신속한 기동과 통일된 집중사격, 프레데릭키안 보병

 

프로이센의 군인왕 빌헬름 1세는 약체였던 프로이센군을 유럽 최정예로 탈바꿈시켰어.

더불어 3만명 정도에 불과했던 상비군도 8만으로 대폭 증강됬지.

이렇게 양성된 프레데릭키안 보병은 가혹한 체벌과 엄격한 군율로 다져진 정예중의 정예야.

비록 이웃국가에 비해 숫적으로 적었다만 질로 따지면 유럽에서 따라올 자가 없었다고해.

1730년 열병훈련을 도입하고 행군방식을 통일한 것은 호랑이에다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덕분에 신속한 기동과 부대재편이 가능해졌거든. 

 

 

유럽의 정예군단 프레데릭키안에서도 척탄병 연대는 최정예로 취급되었다. 

 

레드코트에 훈련은 실전처럼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이건 프로이센에 더 걸맞을 거 같다.

프레데릭키안은 비인간적일 정도로 스파르타식 훈련을 반복했어.

한 예를 들자면 사격훈련할 때 동시에 총성이 울리지않으면 연대전체를 잠도 안재우고 될 때까지 반복에 반복시켰으니까.

보통 4열 종대이던 진형을 2열로 압축시켰는데 이것은 그만큼 프레데릭키안의 사격능력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거라 봐.

실제로 2열로 축소됨에도 7년전쟁,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에서 프레데릭키안은 오히려 화력에서 적을 압도해버렸다.

 

 

 

 

 -동유럽

 

서구권에서 테르시오가 등장하여 머스킷 보병이 전장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추세에 반해서

동구권에서 머스킷 보병이란 기병의 장식품or보조역할에 가까웠어.

사실 그럴만도한게 동구권에는 테르시오도 박살내는 훗사르라는 씹사기가 있었거든.

서구식으로 개편된 스웨덴군 11000명이 폴란드군 3000명에 대파되고

스웨덴-러시아 연합군 35000명이 폴란드군 6800명에 개박살나는 실정이니 굳이 서구식 군제를 받아들일 필요를 느꼈을까?

오오 훗사르느님이 다해주실거야~하는 풍조가 만연했지.

 

  

1. 훗사르의 고기방패, 비브라니에츠카 의용대

 

1576년 폴란드 왕위에 오른 스테판 바토리는 군제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기병의 기동과 충격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보았어.

비록 당시 서유럽에서 테르시오가 한창 떠오른다지만  재장전하는 사이 훗사르가 돌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지.

그는 반상비군 형태의 비프라니에츠카 연대를 창설했는데 이 부대는 수비에 치중한 모습을 보인다.

적의 공격을 한번 받아내고 머스킷으로 반격한 뒤 적의 충격이 약해지면 훗사르와 함께 돌격해서 마무리.  

결국 주역은 훗사르들이고 비프라니에츠카는 딜탱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보면 되겠다. 

 

 

 

 

2. 불곰국의 예니체리, 스트렐치 연대

 

이반뇌제는 몽골계 칸국들과의 질리도록 전쟁을 끌면서  군사력에 혁신이 필요함을 느꼈어.

머스킷을 다룰 줄 아는 자유민, 수공업자들 3000명 정도를 징집해서 친위대를 조직했는데 이것이 바로 스트렐치야.

초기 스트렐치는 모스크바의 정예부대로 각광받으면서 후에는 규모가 5만명까지 늘어났어.

이들은 몽골기병에 맞서 굴라이-고로드라는 전술을 사용했다.

 

 

조잡해보이지만 몽골기병이 먹히지도않는 화살쏠 때 스트렐치는 나무판응딩이에 숨어서 땅땅땅빵!

 

굴라이-고로드는 이동요새라는 뜻인데 위와 같이 바퀴달린 나무판이 핵심이다.

이 나무판은 몽골족이 써먹는 어지간한 화살이나 원시적인 화기 정도는 막을 수 있었어.

몽골기병이 접근하면 스트렐치는 나무판에 뚦린 구멍을 통해 안정적인 사격으로 미개 몽골리안을 노짱곁으로 보냈지.

몽골계 칸국을 정복하는데 꽤 큰 역할을 하기는 했는데 어디까지나 유목민에 특화된지라 스웨덴과의 전쟁에서는 죽을 쒔어.

1698년 표트르대제의 개혁을 반대하다가 지휘관 1182명이 노짱따라가고 1707년에 완전해산된다.

 

 

 

 

 

3. 동유럽의 혁신, 베드로 보병대

 

이 보병대의 유래는 1700년, 러시아의 북방전쟁 참패에서 기원을 찾아볼 수 있겠다.

표트르대제는 나르바에서 코사크+서구흉내낸 군대 4만으로 스웨덴 카를 12세의 8천과 맞붙었는데 결과는 완벽한 대패.

절치부심한 표트르는 서구의 편제를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새로운 부대를 창설했는데

이것이 바로 베드로 보병대야. 이 부대는 철저한 규율 아래 훈련받으면서 뛰어난 수비력을 갖추게 되었어.

이들의 전략은 특유의 단결/지구력으로 버티면서 적의 전력을 저하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서구와 동구의 적절한 혼합이랄까.

어차피 시대가 지날수록 동유럽군사 편제 자체가 서구화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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