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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인물 / 진나라 ] 최초의 시황제 "진시황"을 암살 시도했던 자객 '형가'

 

기원전 227년, 약 500년을 이어온 춘추전국시대도 초강대국 진(秦)나라에 의해 끝이 다가왔다

그런데 천하통일을 앞둔 진왕 정(진시황)과 그의 호위병들은 한 사내를 궁궐에서 찢어 죽였으니

칼 한자루를 던지고 죽어간 그는, 진시황을 암살하려고 했던 것이다.

무엄하게도 진시황을 죽이려고 한 사내의 이름은 ‘형가(荊軻)’였다.

 

 

형가는 원래 전국시대의 강국, 제(齊)나라 귀족의 후손이다.

제나라 대신인 경봉(慶封)의 후예지만, 자손 형가는 전국을 떠도는 운명이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다가 연나라의 정착하니, 원래 성인 경(慶) 대신 형(荊)을 성씨 삼아 형가라 했다.

 

그는 검술과 독서를 좋아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가 검술의 달인인 것을 몰랐다.

연나라에서 술주정뱅이처럼 저잣거리를 전전했으나 곧 축을 타는 고점리(高漸離)와 베프를 먹었는데,

고점리가 축(거문고와 비슷한 악기)을 타면, 형가는 그것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했다.

그때만큼은 형가가 히로뽕 맞은 마약중독자처럼 흥에 겨웠다고 한다.

 

(전국칠웅의 지도, 형가는 최북단 연나라 사람이었다)

 

“高漸離撃築, 荊軻和而歌於市中, 相樂也, 已而相泣, 旁若無人者”

“고점리는 축을 타고, 형가는 화답해 시장에서 노래를 불러 서로 즐기면서도 이내 울기도하니,

 주위에 마치 아무도 없는 듯 했다.”

 

서로를 자신보다 더 알아주던 둘, 그들은 흥에 취하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미친 듯이 놀고 웃고 울었다.

이를 일컬어 사람들은 '방약무인(傍若無人)', 즉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했다고 말했다.

형가는 평소에는 늘 술을 퍼마시고 주객(술 좋아하는 아재)들과 놀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피가 나게 검술을 연마하고 독서에 힘썼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몰랐지만, 형가는 어질고 호걸스런 인물들과 사귀었던 것이다.

 

 

 

연나라에서, 형가는 고점리 말고도 자신을 진정 알아주는 사람을 한 명 만났다.

현인 전광(田光), 그는 미치광이 같아 보이는 형가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금방 파악했다.

형가는 평소에는 또라이처럼 굴었지만, 고점리와 전광에게만큼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형가가 살아갈 당시는 모든 것이 뒤바뀌는 어둠의 다크요, 혼돈의 카오스였다.

전국칠웅의 하나인 진(秦)나라는 너무나 강해져서, 나머지 여섯 나라가 힘을 합쳐도 못 이길 정도가 됐다.

 

조나라 : “야,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한 때 진나라와 대립각을 세우며 다이다이를 뜰만큼 강대국이었던 조나라마저도 기원전 260년,

진나라 명장 백기(白起)에게 40만 대군이 생매장당한 후(장평 대전) 완전히 빌빌거리기 시작했으며

그 외에 다른 나라들 사정은 부연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진나라 대장군 백기, 얼마전 장평에서는 수십만 병사의 유골이 발견됐다)

 

그리고 진나라의 마지막 ‘왕’인 영정(嬴政, 진나라 왕실의 성은 ‘영’ 씨이다.),

진왕 정은 이미 어린 나이에 내시 노애의 반란을 제압했으며,

진나라 최고의 실력자였던 여불위마저도 산골 깡촌인 촉(蜀) 땅에 내쫓아 자결하게 했다.

그는 자신의 선조들과는 달리, 영토 확장이나 국력강화 따위보다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500년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원을 하나로 한다.’ 그것이 진시황이 품은 야망이었다.

 

그는 성인이 되자마자 즉각적으로 이웃나라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230년, 장군 내사승(內史勝)으로 가장 약한 한(韓)나라부터 정복하게 했으며,

기원전 228년에는 대장군 왕전(王翦)을 시켜 조(趙)나라를 침공해 멸망시키게 했다.

중원의 일곱 강국 중 두 나라가 단 2년 만에 진나라에게 박살났다.

멸망이 멀지 않은 네 나라(연, 제, 위, 초)는 모두 두려움에 떨었으며, 각자 대책을 마련했다.

 

 

(하 진나라군 막아낼 방법이 없다 이기야...)

 

당시 가장 북쪽의 연나라, 그곳의 태자는 ‘단’(희단姬丹, 연나라 왕실의 성은 ‘희’ 씨이다.)이었다.

태자 단은 어린 시절 진나라의 인질이 되어 진왕 정과 친구로 지냈고, 그가 어떻게 변하는 지도 보았다.

태자 단은 생각했다. 여러 가지로 고려해 봐도 다음 타겟은 바로 연나라라고.

그러나 곧 닥칠 진나라의 대군을 막을 방법이 그에게는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연나라의 대신 국무(鞠武)가 태자 단에게 조언했다.

연나라에 전광이라는 선생이 있는데 큰일을 서로 의논하고 결정할 만 하다고.

국무의 소개를 받고 전광을 찾아간 태자 단, 전광은 시황제 암살을 답으로 제안하며 형가를 소개한다.

그런데 그때, 태자 단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광에게 신신당부한다.

“우리가 말한 것은 국가의 큰일이니, 절대로 누설하지 마세요.”

 

전광은 형가에게 태자 단을 만날 것을 권하면서, 나름 형가를 격려(?)한다.

“형가, 자네는 태자에게 들러 광(전광)이 이미 죽어 누설하지 않았음을 전해주게.”

목숨을 걸고 비밀을 지키겠다는 뜻.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광은 스스로의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만다.

형가를 만난 태자 단은 자신이 전광에게 함부로 말했음을 깨닫고 통곡한다.

형가는 암살을 위해 진왕을 직접 만나야한다고 말하고, 이를 위해 태자 단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하나는 연나라 곡창지대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독항(督亢) 지방의 지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천금의 현상금이 걸린 번오기의 머리.

 

(애나라는 진나라의 제후국 개념인데 그냥 진나라라고 보면 된다)

 

당시 연나라에는 진나라의 망명객이 있었으니, 바로 번오기(樊於期)였다.

번오기는 진왕 정을 진나라의 실력자 여불위의 사생아로 여기고 ‘진짜 왕을 세우자’며 반란을 일으켰던 인물.

ㅂㄷㅂㄷ한 진왕 정은 반란을 신속히 제압했고 번오기의 가족을 모조리 처형시켰으나,

반역을 일으킨 당사자 번오기만큼은 운 좋게 연나라로 망명할 수 있었다.

연나라의 한 대신이 북쪽 흉노 땅으로 보내버리자고 얘기했다.

“진왕은 몹시 포악해 연나라를 목표로 삼고 있는데, 이 와중에 번오기까지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러자 태자 단은 담담히 그에게 대답했다.

“번 장군(번오기)은 온 천하에 몸 둘 곳이 없어 나를 의지해 왔습니다.

제가 죽기 전까지는 그와의 의리를 저버리고 그를 흉노로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진시황 : 존말할 때 번오기 그새끼 잡아와라...)

 

어찌됐건 번오기의 목을 요구한 형가에게 태자 단은 무겁게 고개를 젓는다.

“독항의 지도 따위는 얼마든지 줄 수 있소이다.

그러나 나를 믿고 귀순한 번오기의 머리를 어찌 내줄 수 있단 말이오?“

그러자 형가는 곧 번오기를 찾아가 자신의 암살계획을 설명했다. 번오기는 기뻐하며 자신의 목을 내었고,

형가는 그의 목을 베어서 함에 담고 독항의 지도와 함께 진나라로 떠날 준비를 마친다.

 

태자 단은 장사 진무양(秦舞陽)을 일행으로 추천한다.

이미 13살 어린 나이부터 사람을 죽여 본 진무양은 담대하기로 유명한 청년.

그러나 형가가 모든 준비에도 떠날 생각을 않자 조바심이 난 태자는 형가에게 재촉하는 듯 하는 말을 한다.

그러자 그는 태자에게 ‘어떻게 저런 좆밥 일게이 같은 놈이랑 일을 같이 합니까?”라고 화를 냈다.

 

형가는 자신의 친구 노구천(魯句踐)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는 노(魯)나라 왕족의 후손이었으나, 형가와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녔다.

형가와는 다툰 적이 있어 한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는데,

제나라에 머물던 노구천은 형가의 연락을 받고 연나라로 이동했으나 범람한 제수(濟水)에 발이 묶여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형가와 태자 단, 마지막 날에도 노구천은 도착하지 않았고

결국 형가는 장사인 진무양을 부사(副使)로 삼고 역수(易水) 물가에서 출정식을 가졌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절대로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여정,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은 흰 상복을 입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고점리는 축을 탔다. 처절한 가락에 연나라의 대신들은 모두 눈물을 훔쳤다.

형가는 무겁게 입을 열고 허공을 향해 처연하게 노래를 불렀다.

 

“풍수수혜역수한(風蕭蕭兮易水寒)

 장사일거혜불부환(壯士一去兮不復還)”

 

“바람 쓸쓸하고 역수는 차구나.

 장사 한 번 떠남이여,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늘 저잣거리에서 고점리와 노래 실력을 뽐내던 자객 형가, 그의 마지막 노래는 너무나 처절했다.

그 노래가 어찌나 사람의 심금을 울렸는지, 듣는 사람들의 머리털이 모두 곤두섰다고 한다.

형가는 노래를 부르고 술잔을 집어던지며 수레에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진으로 떠났다.

 

 

어느덧 진나라에 도착한 형가, 그는 진나라의 대신인 몽가(蒙嘉)를 만났다.

그는 진나라 명문 몽씨 가문의 대신이며, 뒷날 만리장성을 쌓은 몽염(蒙恬)의 친족이었다.

“연나라 왕이 대왕(진시황)의 위엄을 진정 두려워하여 감히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 군대에 대항하지 못하고, 

 온 나라가 진나라의 신하와 제후가 되어 공물을 바치길 원합니다.”

또한 진왕 정이 마음에 흡족할 말 또한 추가했다.

“연나라 왕은 두려워서 그 뜻을 스스로 말하지 못하고 번오기의 목을 베어 연나라 독항의 지도와 함께 바치고, 

 사자(형가)로 하여금 대왕께 바치게 하였사옵니다. 대왕께서는 명을 내려 주소서.”

 

 

원수인 번오기의 목과, 연나라 군사 요충지인 독항의 지도. 진왕 정은 너무나 기뻐서 즉시 형가를 만나겠다고 한다.

진나라의 궁전인 함양궁, 형가와 진무양은 각각 번오기의 머리와 독항의 지도를 들고 진왕 정에게 나아갔다.

그러나 계단에 가까이 가자 진무양은 공포에 질려서 벌벌 떨며 어쩔 줄 몰라했고,

진나라의 신하들은 “저 새끼 왜 저래?” 이러면서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자 형가가 한 번 뒤를 돌아 진무양을 쳐다보고 다시 진왕 정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북쪽 촌놈이 지금껏 대왕을 본 적이 없어서 저렇게 떨며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모쪼록 대왕께서는 용서하셔서 저희의 임무를 다하게 해주소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진왕 정은 형가에게 명령한다.

“진무양이 들고 있는 지도를 가지고 오라.”

형가는 진무양의 독항 지도를 건네받고 진시황에게 직접 바친다.

그런데 아뿔싸, 진왕이 둘둘 말린 지도를 다 펼치고 나니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날카로운 비수였다.

침착한 형가, 왼손으로는 진왕 정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비수로 그를 베었다.

그러나 놀란 진왕이 얼른 도망치느라 그의 옷깃만 베었을 뿐이었다.

진나라의 신하들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한 비상사태. 그러나 신하 및 호위병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而秦法,羣臣侍殿上者不得持尺寸之兵

 諸郎中執兵皆陳殿下,非有詔召不得上.’

 

‘진나라 법에 따르면, 왕을 직접 모시는 신하들은 한 치의 무기도 갖지 못했었다.

 또한 무기를 가진 자들은 전각(왕의 자리) 아래 진열해야 했고, 왕의 부름이 없으면 전각에 오를 수 없었다.’

 

 

이러한 국법 때문에 긴급 상황에서도 신하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으며

자기 얼굴에 칼이 날아오는 비상사태에 진왕 정은 신하들에게 명령할 겨를조차 없었다.

형가가 진왕에게 필살의 일격을 넣으려던 순간,

시의(侍醫), 즉 왕의 주치의 하무저(夏無且)는 자신의 약주머니를 형가의 얼굴에 던져 공격을 저지했다.

덕분에 찰나의 시간을 번 진왕, 급히 기둥 뒤로 튀었지만 다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급한 와중에 칼마저 칼집에서 뽑히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진왕 정.

그 와중에 주위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王負劍!”

“왕이시여, 칼을 등에 지시옵소서!”

 

진시황을 살린 한 마디. 기록상으로는 누가 그 말을 외친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만화 십팔사략>에서 고우영은 진왕의 후궁인 호녀(胡女)가 그런 말을 했다고 주장하며,

그녀와 진시황의 아들이 2세 황제인 호해(胡亥)라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정신을 차리고 등에 지니 그때에야 칼은 칼집에서 뽑혔다. 그리고 달려드는 형가를 베었다.

진왕의 일격에 왼쪽 다리가 잘려나간 형가, 그 자리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형가는 최후의 일격으로 가슴의 비수를 진왕에게 던졌다.

안타깝게도, 갈 곳 잃은 비수는 진왕의 옆을 스쳐 기둥에 맞을 뿐이었다.

진왕은 칼로 형가를 공격해 여덟 군데에 칼집을 냈다.

형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기둥에 기대 누워서 진왕에게 소리쳤다.

 

“事所以不成者,以欲生劫之,必得約契以報太子也”

“일이 실패한 것은 너(진왕)를 사로잡아 태자에게 보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형가는 진시황을 죽이기보단 사로잡아서 연나라 침공을 막으려 했던 것.

그러나 그것은 형가의 마지막 외침에 불과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의 무사들이 달려들어 형가와 진무양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시황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겼고,

머지않아 연나라를 정복하며 천하까지도 통일하게 된다.

 

 

* 뒷이야기

 

형가와 함께 축을 타던 형가의 베프 고점리, 그는 친구의 원수를 갚기 위해 진시황의 왕궁에 위장 취업한다.

형가의 친구로 연루됐음에도 그 재능을 인정받아 눈을 뽑힌 채 악사로 일하게 된 것.

때를 기다리던 어느 날, 그는 납덩이를 넣은 축을 진시황에게 집어던져 암살하려 했으나

형가와 마찬가지로 간발의 차이로 실수하고 목숨까지 잃게 된다.

 

 

뒷날 많은 사람들이 형가와 그의 행동을 기리게 되니,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그 안에 '자객열전'을 넣고 형가를 높이 평가했으며,

민란을 일으킨 조선의 홍경래는 "가을 바람에 역수 장사(형가)의 주먹이요, 벌건 대낮에 함양 천자(진시황)의 머리라"라는 시를 지었다

이연걸이 출연한 영화 <영웅>은 형가와 진시황 암살을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세줄요약

1.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 연나라의 자객 형가는 진시황을 암살하려고 했다

2. 암살직전까지 간 형가, 그러나 천운으로 진시황은 살아남고 형가는 죽고 만다

3. 형가를 모티프로 한 무협지나 영화 등이 있는데 기회되면 한 번 봐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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