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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 II 당시 일본 총리 리스트 및 전후 처분.

 

 

 

 

 

 

 

 

 

 

 

 

32대 히로타 고키 (1936.3-1937.2)

 

A급 전범으로 사형. 그런데 본인으로서는 군부의 세력을 억제하려고도 했고, 

더욱이 일본이 중일 전쟁이 일으킨 건 1937년 7월이었으니 억울한 면도 있다. 

일본 전쟁 '준비'에 대한 상징적인 책임 및 사형급 전범인 고노에 후미마로가 자살해 버려 대신 책임을 물을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다.

실제로 본인도 억울했는지 사형 당한 A급 전범들 중 유일하게 "덴노 헤이카 반자이" 라고 외치지 않고 묵묵히 교수형 당했다.

 

 

 

 

 

 

 

 

 

 

 

 

 

 

33대 하야시 센쥬로 (1937.2-1937.6)

 

1930년 조선군 사령관 역임하다가 1937년 군부의 지시로 현안 문제를 날치기 처리하기 위해 총리로 부임.

그 때문에 선거에서 대패하자 특단의 조치로 의회를 해산하려다가 내각 불신임 받고 122일만에 사퇴하였다.

전쟁 중이던 1943년에 사망하여 전범 책임을 묻진 못했다. 

 

 

 

 

 

 

 

 

 

 

 

 

 

 

34대 고노에 후미마로 1차 (1937.6-1939.1)

  

후술한다.

 

 

 

 

 

 

 

 

<중일 전쟁 발발 - 1937.7>

 

 

 

 

 

 

 

 

<난징 대학살 - 1937.12~1938.2>

 

 

 

 

 

 

 

 

 

 

 

 

 

 

35대 히라누마 기이치로 (1939.1-1939.8)

 

법관 출신으로 중일 전쟁을 일본인의 숙명이라고 주장한 극우 파시스트.

또라이답게 국민 총동원급 징병을 가능하게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외교적으로는 독일과 협동하여 소련을 공격해야한다고 주장하다가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자 멘붕하여 사임하였다.

전후 A급 전범으로 종신형 복역하다가 질병으로 가석방된 직후 사망하였다. 

 

 

 

 

  

 

 

 

 

 

 

 

 

 

36대 아베 노부유키 (1939.8-1940.1)

 

총리로 부임하자 여야 세력의 연합을 시도하다가 군부 세력에게 불신임 받고 138일만에 쫓겨났다. 

그 후 마지막 9대 조선 총독(1944-1945)으로 부임하여 열심히 조선을 수탈하다가 

미군이 서울로 북상하자 할복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항복 조인식에 끌려나와 서명하게 된다. 

연합군에게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으나 전쟁 범죄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고 몇 년 뒤 죽었다.

일본으로 쫓겨나면서 "찬란한 조선에게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는 식의 뻘소리를 내뱉었다는 루머가 널리 퍼져 있지만, 

신빙성은 별로 없다. 

 

 

 

 

 

 

 

 

 

<독일 폴란드 침공 - 1939.9~1939.10>

 

 

 

 

 

 

 

 

 

 

 

 

 

 

37대 요나이 미츠마사 (1940.1-1940.7)

 

해군대신 출신으로 전쟁의 확전을 지양하고 유럽 전쟁 불개입을 주장하였으므로 추축국 삼국 동맹을 저지하였다. 

태평양 전쟁론을 반대하며 미국과 영국과의 협상을 시도하였다. 

또한 군수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를 침공해야 한다는 육군의 '무력에 의한 남진론' 거절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군수 물자를 확보하려 하였다.

 

이러한 놀라운 정책에 충격을 받은 육군부는 당연히 강력하게 반발하였고 요나이는 육군의 책모에 시달리다가 6개월만에 사임했다. 

종전 무렵 해군상으로 재임명되어 외무상과 함께 포츠담 선언의 수용을 주장하며 일본의 항복을 주도하였다.

그 후 전범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덴노를 변호하였고, 해군상으로 유임하며 패전 난국을 수습하다가 1948년에 병사하였다. 

 

사방에 온통 미친놈들 밖에 없는 또라이 같은 환경 속에서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한 인물이 존재했다는 것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 

 

 

 

 

 

 

 

 

 

<독일 프랑스 침공 - 1940.5~1940.6>

 

 

 

 

 

 

 

 

 

 

 

 

 

 

38, 39대 고노에 후미마로 2,3차 (1940.7-1941.10)

 

1937년 대책없이 중일 전쟁 일으킨 또라이. 1940년 다시 권력을 잡자 중일 전쟁을 확전시켰으며, 

의회를 강제 해산시켰고.. 다당제를 폐지..하여 일당 독재체제를 구축하였다. 

또한 독일, 이탈리아 함께 추축국 삼국 동맹을 체결하고 

자신들이 주도하는 질서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였다.

 

WW II 막장 제펜을 향해 시동 건 장본인으로 후임자 도조 히데키 때에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1945년 패전하자 A급 전범이 너무 확실한 그는 히로히토한테 도와달라고 떼쓰다가 쌩까이고 음독 자살한다. 

 

 

 

 

 

 

 

 

 

 

<독일 바르바로사 작전 - 1941.6>

 

 

 

 

 

 

 

 

 

 

 

 

 

 

40대 도조 히데키 (1941.10-1944.7)

 

나왔다;; 사진만 봐도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막장.

...일단 1941년 12월 천조국을 기습해 태평양 전쟁을 시작했다....

선전포고도 없는 기습으로 천조국에 (잠깐) 승리하자 자신감을 얻은 그는 군부 독재의 끝을 달리게 된다.

육군대신, 내무대신, 외무대신, 문부대신, 상공대신, 군수대신 등 거의 모든 군사, 행정 요직에 스스로를 임명하는 막장짓까지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그 후 빡친 천조가 쇼미더머니 치고 선박과 비행기를 공장에서 찍어내자 패전을 거듭하게 된다.

그런데도 정신 못차리고 카미카제가 난국을 뒤엎을 수 있는 획기적인 전략이랍시고 즐겨 사용하였다.

또한 전장을 환기시킨다며...영국령 버마까지 공격해 전선을 막장급으로 늘려 놓는다.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전황이 기울자 1944년 도망치듯 사임하였지만 패전 후 붙들려 당연히 A급 전범으로 사형

 

권총 자살 어설프게 하려다가 실패하고 전쟁의 책임을 덴노와 국민에게 돌리는 발언을 하는 등 마지막까지 추태를 부렸다. 

정치가, 행정 관료, 군인으로서 능력 모두 대책 없는 무능함을 보여준 인물이면서도 혼자 다 해먹으려고까지 했다.

결과 WW II 일본은 전설이 되었다.

 

 

 

 

 

 

  

<일본 진주만 공습 - 1941.12>

  

 

 

 

 

 

 

 

 

<미국 미드웨이 해전 - 1942.6>

 

 

 

 

 

 

  

 

 

<미국 과달카날 전투 - 1942.8>

  

 

 

 

 

 

 

 

<일본 임팔 작전 - 1944.3>

 

 

 

 

 

 

 

 

 

<미국 마리아나 칠면조 사냥 - 1944.6>

 

 

 

 

 

 

 

 

 

<연합군 노르망디 상륙 작전 - 1944.6>

 

 

 

 

 

 

 

 

 

 

 

 

 

 

41대 구이소 구니아키 (1944.7-1945.4)

 

8대 조선 총독 (1942-1944)으로 재직 당시 조선의 청소년들을 학도병과 위안부로 전쟁터로 끌고 간 쓰레기.

1944년 총리로 임명되어 도조 히데키가 막장으로 저질러 놓은 짓을 물려받아 자신의 색을 덧칠하여 막장짓을 더한 뒤;;;

종전 후 붙잡혀 A급 전범으로 종신형 선고 받고 복역하다가 형무소에서 식도암으로 죽었다. 

 

 

 

 

 

 

 

 

 

<미국 이오지마 전투 - 1945.2>

 

 

 

 

 

 

 

 

 

 

 

 

 

 

42대 스즈키 간타로 (1945.4-1945.8.17)

 

사실상 전쟁을 포기한 일본이 종전 협상을 위해서 임명한 인물. 

스즈키는 마지막 희망을 소련에게 걸어보았지만 소련은 가볍게 쌩까고 오히려 8월부터 만주를 쌈싸먹으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스즈키가 완전히 멘붕한 가운데 외무쪽에서는 항복을 주장하고, 육군쪽에서는 1억 옥쇄로 자폭하자고 주장하며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 

막장 난장판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결국 원폭 두 방 맞고;;; 보다 못한 덴노까지 나서서 항복하라고 권유하자 

정신차리고 비로소 무조건 항복을 발표하였다; 분노한 육군 강경파가 항복 선언을 저지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그들의 영원한 라이벌 해군에 의해 진압된다. 그 후 스즈키는 패전 책임을 지고 항복 선언 이틀 후 사임하였다. 

취임 당시 77세의 고령인데다가 딱히 뭐 한 것도 없기 때문에 처벌 받지는 않았다. 그 후 1948년에 자연사했다.  

 

 

 

 

 

 

 

 

 

 

<미국 오키나와 전투 - 1945.4>

 

 

 

 

 

 

 

 

 

<독일 항복 - 1945.5>

 

 

 

 

 

 

 

 

 

<소련 8월의 폭풍 작전 - 1945. 8. 9> 

 

 

 

 

 

 

 

 

 

 

<미국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 1945. 8. 6, 8. 9>

 

 

 

 

 

 

 

 

 

<일본 무조건 항복 - 1945.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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