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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후반, 서쪽에서는 영미 연합군이 몰려오고 동쪽에서는 독일에 대한 복수심에 불탄 소련의 붉은 군대가 진격해오고있었다.

 

독일의 목을 옥죄는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독일 본토에 대한 영미 연합군의 폭격이 그치질 않았던것이다. 독일의 산업 지대와 도시들은 폐허로 변했고,

 

노약자와 어린이 같은 민간인들도 죽어나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히틀러는 영국에게 복수를 하고 전세를 역전시킬 신무기를 미친듯이 찾았으며,

 

그 결과, V-1, V-2라는 신무기가 2차 대전 후기에 사용되었다

 

그중에서 V-2는 시대를 앞서나간 독일의 기술의 표본이며, 세계 최초의 탄도미사일이다.

 

 

 

세계 최초의 탄도미사일 V-2 미사일

 

 

사실, V-2가 사용되던 시기인 2차 대전 후기의 시점에서 로켓 기술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다.

이미 독일은 충분한 로켓 기술을 확보한 상태였던 것이다.

 

독일에게 있어서 로켓 기술의 역사는 베르사유 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군비에 제한을 받은 독일은 조약에 명시되지않은 로켓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1939년에는 A-5로켓을 시험발사하는데 성공하였으며, 1942년 10월에는 A-4미사일의 발사준비를 끝마쳤다.

A-4는 V-2의 정식명칭 이다.

 

 

 

 

페네뮌더 박물관에 전시된 V-2 탄도미사일(출처: 위키백과 영문판)

 

 

 V-2 탄도미사일이 처음으로 사용된것은 1944년 말의 일이었다. 1944년 9월 8일, 영국 런던의 외곽에 위치한 치즈웍의 스테블리 가에 위치한

집 몇채가 안전히 파괴된것이 V-2의 첫 성과였다. 이를 시발점으로 V-2의 런던공격이 시작되었다.

 

영국의 전시내각이 우려하던 바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V-1이 공격을 해왔을 때, 영국은 대공포, 전투기를 투입하거나 심지어 열기구를 띄워올려서

V-1을 격추하거나 공중에서 폭발시켰으며, 그러한 대처로 인해 대다수의 V-1을 막아낼수있었다. 그러나, 속도도 느리고 저공비행을 하는 V-1과는 V-2은

차원이 달랐다. V-2는 최고시속 4800Km의 속도로 매우 높은 고도로 상승했다가 그 이후에는 엔진이 꺼지고 중력에 의해 저절로 낙하를 하는 방식으로 공세를 펼쳤다.

 

 

V-2가 사용하는 주연료는 두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메틸알코올이고 다른 하나는 액체산소였다. 그 외에 질소, 과산화수소, 과망가니즈산 염의 연료도 사용되었다.

터빈과 펌프에 의해 액체 연료들은 연료실로 이동하였고, 가스연료의 폭발은 V-2의 이륙과 상승에 필요한 추진력을 발생시켰다.

8톤에 달하는 연료가 1분만에 연소실로 쏟아져 들어갔으며, 과산화수소와 과망가니즈산 나트륨의 화학 작용은 600마력에 달하는 마력을 발생시켰다.

 

 

항법시스템을 제어하는 자이로스코프는 후미의 조타시스템과 연결되어있었으며, 자이로스코프에 작은 움직임이 감지되면

바로 V-2의 비행 코스를 조절하는 조타 시스템으로 그 충격이 전해졌다. 조타 시스템의 조절은 자동 제어방식으로 작동되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였다. 또한 조타 시스템이 로켓을 조절하는 시간은 1분 남짓으로 매우 짧았는데,

그 사이에 로켓은 비행 코스의 32Km를 날아갔다. 연료가 모두 연소되면 그때부터는  그때까지 엔진이 불을 내뿜으면서 만들어진 추진력으로 날아갔다.

V-2 로켓의 사정거리는  320Km 였다. 로켓 엔진이 꺼질때는 속도가 자그마치 시속 7080Km에 이르렀다.

 

 

이후, 낙하할때는 대략 시속 4000Km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그대로 목표물에 내리꽂혔다.

이륙에서 부터 목표물 명중까지의 모든 과정은 단 5분안에 이루어졌으며, 탄두 끝에 위치한 충격 나사에 의해 폭발되었다.

 

 

발사되기위해 준비중인 V-2로켓과 발사팀

 

 

 

V-2가 2차 대전 초에라도 나왔다면 영국을 맹렬히 폭격하여 초토화시킬수 있었을것이며, 히틀러는 소련의 모스크바까지 폭격하려 하였을것이다.

하지만, V-2가 실전에 사용된것은 1944년 9월의 일, 이미 너무 늦었다. 그래도 독일은 끝까지 V-2를 밀어주었으며, 꾸준히 생산해내었다.

1944년 1월에는 50대, 2월에는 86대, 3월에 253대가 제작되는등, 1944년 9월 15일까지 1900여대를 완성하였으며, 1945년 2월 15일까지 총 5200여대를 생산해내었다.

 

그중에서 실제로 발사된 로켓은 3172대, 놀랍게도 영국에 투하된 양보다 벨기에에 투하된 V-2가 더 많다. 정확히는 영국에 1402대, 벨기에 본토에 1664대가

투하되었다. 런던에만 1358발, 벨기에의 항구도시 앤트워프에는 1610대가 떨어졌다. 그야말로 도시전체를 폐허로 만들수있는 양이 런던과 앤트워프에 각각 

떨어진것이다. 런던에 떨어진 V-2는 막대한 피해를 끼쳤는데, 런던에서만 2,754명이 죽고, 6,523명이 부상 을 입었으며, 앤트워프에서는 1736명이 사망하고 4500명이 부상당하였다. 하루 평균 30대의 V-2가 런던에 투하된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연합군의 진격을 막을 목적으로 레마겐 철교에 11대를 발사하였으나 파괴는 못하였으며,

네덜란드의 도시 마스트리흐트에 19대, 프랑스에는 도시 릴과 파리에 20여대를 발사하는등, 76대를 쏘아올렸다.

 

 

 

그 어떤 전투기로도 따라잡을수 없이 빨리, 그리고 높은 고도에 올라갔다가 뚝 떨어지는 V-2을 영국은 그 어떤 수단으로도 격추할수가 없었다.

V-2의 공격을 버텨내는 수밖에는 없었다. V-2의 폭격이 있기전, 부상자가 발생했을시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시내의 모든 병원을 비워두었고,

독일이 V-2의 정확한 투하지점을 알아내지 못하도록 언론에서 로켓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지 못하도록 검열을 실시하였다.

 

마지막으로 발사된 V-2 2대는 1945년 3월 27에 영국을 향해 발사되었으며, Ivy Millichamp라는 34세의 한 영국인이 V-2의 공격으로 그의 집에서 숨지고 말았다.

 

V-2는 2차 대전 종식후 독일의 여느 비밀병기가 다 그렇듯, 연합국의 손에 넘겨졌으며, 특히 미국은 로켓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던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와

도른베르거라는 거물들까지 손에 넣고 우주 항공 분야를 개발하였다.

 

V-2 로켓은 1946년 10월에 뉴멕시코 주에서 우주로 쏘아 올려졌고, 이 V2로켓은 고도 342,900피트, 104,600m까지 올라갔다.

그곳에서 카메라로 지구표면을 찍었는데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에서 지구를 촬영한 사진이다.

 

 

 

인류 최초로 우주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 (출처: 위키백과 영문판)

 

 

V-2의 정식명칭은 A-4 로켓이다. A-4가 개발된 목적은 영국을 폭격하여 복수를 하는것, 그리고 영국인들의 사기를 꺾어 전황을 반전시키려는 것이었다.

V-2는 1만 명에 가까운 사상사를 발생시키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하였지만,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었고, 종전후 연합국의 손에 넘겨졌다.

V-2 로켓은 우주 항공 과학과 탄도미사일 분야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으며, 탄도미사일과 우주 항공 과학의 아버지로 역사에 남게되었다.

 

 

인용 및 참고 자료

2차 대전사 08부 독일의 신무기

위키백과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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