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를 포함한 북유럽 전체는 2차대전 개전 전부터 독일과 영프 연합군 및 소련 등이 눈독을 들이던 곳이었어.
먼저 북유럽은 전쟁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자원(특히 철강)이 풍부했고, 스칸디나비아 지방 국가들이나 덴마크가 연합군에 협력할 경우 독일은 위로도 적을 상대해야 하는 좆같은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이었지.
따라서 독일은 4월 9일, 북유럽 국가들이 연합군에 협력하고 반 독일 정세를 형성할 것을 막는다는 구실로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침공하였어. 작전명 베저위붕. 이 작전동안 영국군과 독일군 사이의 2차대전 첫 번째 전투가 발생했어.
(4월 9일 침공 당일, 방어전에 투입된 덴마크군. 맨 앞 오른쪽 부사수 아재는 2014년에 사망)
지리상으로 보았을 때 노르웨이 침공과 동시에 덴마크도 점령하는 것은 독일 입장에서는 매우 당연한 것이었지.
덴마크는 전략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곳은 아니었으나 노르웨이 침공에 필요한 징검다리였고, 국토가 대체적으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을뿐더러 군사력이 매우 약했지. 공군과 기갑 전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어.
덴마크는 개전 6시간 만에 독일이 내정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항복하였지만, 개전 후 덴마크군이 아예 저항을 안 한 건 아니라서 덴마크와 독일 사이의 총 사상자는 약 220명이었어. 그러나 독일은 유대인 문제에서만큼은 양보하지 않았고, 2차 세계대전 동안 덴마크의 유대인 약 570명에 체포되었고 그 중 약 56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해.
크리스티안 10세는 최대한 많은 유대인들을 스웨덴으로 탈출시키려고 노력하였어.
(독일군의 주요 상륙 도시)
덴마크로의 진격과 동시에 독일은 노르웨이에 대한 공격도 개시했어. 각종 독일 해군함들이 수천 명의 병력을 싣고 노르웨이 주요 거점에 상륙하였으며, 독일군 공수부대들도 후방에 상륙하여 점령을 도왔어.
이 과정에서 몇몇 독일 해군함이 아주 어이없게 격침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어.
대표적인 예가 군함 '블뤼허' 격침 사건인데, 노르웨이군 포대의 탐조등에 의해 04시 15분쯤 발견되어 48년동안 단 한 번도 안 쓰인 280mm 크루프 해안포 두 방에 약 1100여명의 장병과 함께 수장(...)되어버려.
위 지도에는 안 나온 나르빅이라는 항구 도시도 포함하여 오슬로를 제외한 위에 나온 모든 항구 도시들이 독일군에게 점령당해.
영국은 당연히 노르웨이에 대한 지원을 선언하고 함대를 동원하여 독일 해군을 공격하고 병력을 상륙시키는 등 프랑스와 함께 노르웨이를 도왔어. 한편 연합국으로 망명한 서부 폴란드군 생존자 일부가 영프 연합군과 함께 노르웨이에 상륙하여 싸우기도 했어.
(격침당한 독일군함 '블뤼허')
한편 북부 노르웨이의 항구 도시인 나르빅에서는 치열한 해전이 전개되었는데, 2000여명의 산악부대를 실은 독일군 구축함 10척과 영국 함대의 전투는 독일 구축함들의 연료와 포탄이 바닥나면서 영국군의 승리로 끝나. 나르빅 육지에서도 영프 연합군과 폴란드군, 노르웨이군은 독일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
그러나 남부 노르웨이 육지에서의 전투는 그리 잘 돌아가지 못했는데, 최신예 장비로 무장한 독일군들과 약 반 세기정도 지난 무기로 무장한 노르웨이군의 오슬로를 둘러싼 전투는 독일의 승리로 끝나.
노르웨이 국왕인 하콘과 노르웨이 정부 각료들은 피난에 피난을 거듭하다가 결국 6월 7일 영국으로 영국 전함을 타고 망명해. 다른 노르웨이 왕가 소속 인원들도 스웨덴을 거쳐 캐나다나 미국 등지로 망명을 감행해.
(나르빅항의 노르웨이군)
노르웨이군은 사력을 다해 저항하였으나 5월 1일에 감행된 영프 연합군의 철수 및 계속되는 독일군의 공격으로 인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 1940년 6월 10일 독일에게 항복해.
그러나 대다수의 노르웨이군이 항복하지 않고 저항을 계속하였고, 그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자 지하 조직화되어 독립군으로 1945년 5월 독일 항복 당일까지 노르웨이에 주둔한 무장친위대와 국방군에 맞서 전투를 계속해.
노르웨이의 전투는 특히 항구 도시 나르빅에서 가장 치열하게 이루어졌어. 이 곳은 연합군의 수송기지이자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거든.
연합군은 5월 28일 온갖 고생 끝에 나르빅을 점령하나, 전선 상황이 악화되고 연합군의 철수 작전인 알파벳 작전이 감행되면서 이 곳은 결국 항복 1일 전인 6월 9일 다시 독일군의 수중에 떨어져. 나르빅은 매우 번창한 항구 도시였으나, 독일군이 다시 이 곳을 점령하였을 때에는 계속되는 전투와 루프트바페의 공습으로 인해 도시가 완전히 버려졌다고 해.
(2차대전 내내 중립을 지켰던 스웨덴군의 장갑차)
독일군은 스웨덴에 대해서는 일체 공세를 취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침공해도 별 득이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어. 노르웨이만 점령해도 발틱해와 북해에 대한 군사력 영향력은 커지고, 스웨덴은 점령해봤자 핀란드와의 연결 통로 외에는 그 어떤 역활도 하지 않을 것으로 독일이 판단했기 때문이야.
한편 그 옆의 핀란드는 일부 자원부대가 의료 병력으로 베저위붕 작전 동안 독일군을 도왔다고 해. 한편 독일은 1940년 6월 18일 스웨덴과 핀란드와 조약을 체결해 독일군의 영토 자유 출입을 승인받았어. 200만명이 넘는 독일군과 대량의 물자들이 스웨덴을 거쳐 핀란드로 들어갔고, 이 루트는 1943년 8월 폐쇄되기 전까지 꾸준히 활용되었어.
한편 독일은 핀란드와도 조약을 6월 19일 체결해 핀란드 내에 독일군 출입을 승인받았고, 이 병력은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 때 SS 노르드 사단이 주축이 되어 독일군의 지원을 대거 받은 핀란드군과 함께 북부 러시아를 공격하는데 사용돼.
한편 중부 유럽에서는 5월 10일부터 독일군이 프랑스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를 침공하는 '황색 작전' (오렌지 작전이라는 명칭도 있어)이 개시되었어. 프랑스는 독일이 노르웨이를 침공한 시점부터 독일에 대한 경계를 더욱 높였으나 마지노 방어선만 믿고 지나치게 자만하는 바람에 폴란드가 버틴 시간보다 더 일찍 패망해버려. 프랑스 침공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시 자세하게 서술할께. 베저위붕 작전은 2차 세계대전에서도 그렇게 영향력 있는 전역이 아니었지만, 침략자에 대해 맞서 싸운 노르웨이군의 용기는 칭송받아 마땅해.
베저위붕 작전은 관련 자료가 영문 위키나 포럼에도 다른 전역들만큼 충분하지 않았어. 시간별로 정리해놓은 자료를 찾아 돌아다녔는데 그런 게 별로 없어서 할 수 없이 관련된 건 최대한 많이 적었어. 정보글치곤 많이 짧은 편이라서 정말 미안해. 그래도 이번 글은 사실에 매우 가깝고 다음에 후술할 프랑스 침공은 더더욱 최선을 다해 적을 테니 재밌게 봐줬으면 해. 다시 한번 말 하는데, 내용이 짧아서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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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요약
1.독일은 영프를 견제하려고 덴마크 노르웨이를 침공
2.덴마크 6시간만에 항복, 노르웨이 2달만에 항복
3.스웨덴 개꿀, 핀란드에 독일군 진주하여 바르바로사 작전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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