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75년에 남베트남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알아볼거야.
사실 북베트남이 파리협정을 깨고 남베트남을 전격적으로 침공했을 때 북베트남과 베트콩애들도 남베트남이 이렇게 빨리무너질 줄은 상상도 못했어.
미국의 새 행정부인 포드 행정부와 남베트남 정부도 마찬가지였고.
생각을 해봐라 아무리 미국의 군사원조가 줄어들어 기동장비와 탄약수급에 문제가 생겼다 하더라도 남베트남이 가진 병력의 수와 장비의 질은 북쪽에서 쌀과 소금을 먹으며 구르마를 끌던 애들과는 차원이 달랐고, 미국의 군사개입도 약속되어 있던 상태였지 않느냐 이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북베트남애들이 남베트남을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건 상식 밖의 일이였고, 미군 역시 '북베트남의 춘계공세는 76년까지 남베트남군만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라는 보고서를 제출한다...
모두가 생각해오던 ARVN(남베트남군).JPG
그러나 북베트남애들과 베트콩들의 공세와 교란속에 남베트남군은 상상보다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으아아아~
이분들 최소 도미노...
북베트남애들은 남베트남군이라는 강철문을 시험삼아 톡 찼는데 이게 강철문이 아니라 스티로폼 문이었나보다 했고...
어쨌건 공세를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중부고원의 요충지 '반 메 투옷'이 3월 10일 날 함락당하고, 현지 남베트남 사단은 와해되어 후방으로 개미 떼 마냥 흩어졌다.
여기가 왜 요충지냐하면 중부고원의 중심도시이자 남베트남 국토가 크게 꺾이는 부분인데, 여기가 함락당하면 남베트남군은 남과 북으로 양분되어서 각개격파 당해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각개격파가 아니라 그냥 무너져버렸지만)
'이 쉐키들이!'
결국 보다못한 남베트남의 대통령 '구엔 반 티우'는 '결단'을 내려 '야 지역별로 나뉘어져 있는 부대들은 즉각 수비가능한 지역으로 모여 수비해라.'라는 명령을 내린다.
우리가 삼국지나 씽나는 전쟁사극보면 꼭 띨띨이들이 쥐콩만한 땅에 목숨걸다가 '으아아아'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노? 티우 대통령도 대령출신이라 그런지 머리좀 ㅍㅌㅊ였나보다 그치?
였는데... 이게 재앙의 시작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반 메 투옷'이 떨어지고, 3월 25일 베트남 중부 최대의 도시이자 옛 고도인 '후 에'시가 북베트남의 기보 합동공세에 떨어져버린다.
남베트남군 최정예 1보병사단이 사수중이었지만 철수명령에다가 엄청난 숫자의 피난민이 유입되자 남베트남 군인들은 '요시'를 외치며 군복을 벗고 피난민 대열에 합류하거나 주어진 방어구역을 버리고 철수선이 기다리는 항구를 향해 냅다 뛰어버렸다.
28일에는 73년까지 한국군이 주둔하며 지키던 중부 최대의 항구도시 '다낭'이 북베트남의 손에 떨어졌는데 이 때 남베트남군의 꼴은 가관이었다고 전해진다.
피난민이고 뭐고 군인들이 철수선에 먼저타기 위해 총질을 하고, 남베트남군들은 후퇴하며 자신들의 병기와 군수물자들을 고이 모셔놓은 덕분에 북베트남애들은 행진하듯 걸어오며 이걸 주워먹기만 하면 됐다고 한다. 주워먹기 ㅍㅌㅊ?
근데 나라가 망해도 의사 몇명은 있다고, 1사단 장병들 중 애국심이 투철하던 일부 병력들이 다낭 해안 사구에 진지를 쌓고 북베트남군을 방어하나 소수의 병력이 몰려드는 수개사단병력을 어찌할 수는 없는지라 이들은 전멸당했다.
독수리 성님 ㅍㅌㅊ?
다낭이 떨어지자 CIA 슨상님은 남베트남군에 대한 기대따위는 포기하고 오직 괌에서 대기중인 B-52들이 돌아와야지만 북베트남애들의 진공을 막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 주신다.
칭챙총 킬러.jpg
사실 북베트남이 제일무서워하는 병기가 바로 B-52였거든. 호치민 루트 차단작전에서는 폭탄 수십톤을 투하해서 베트콩 1명을 살상할 정도로 엉망이었지만 일단 융단폭격이 시작되면 사기고 나발이고 간에 나무사이 그물망에 매달려서 '아이구 슨상님 계실적에는...'이라면서 폭압이 자신을 비켜가기만을 기도해야 할 정도였다.
거기에 전략폭격... 이미 72년 라인베커에서 북베트남군이 경험한 미군의 유도폭탄을 통한 핀포인트 타격과 B-52의 융단폭격이 다시한번 하노이와 인근 핵심지역에 쏟아부어진다면? 전쟁 지속이고 나발이고 잘못하면 소련과 중공의 지원이 재개될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돌아올 터였다.
근데 CIA의 보고는 복잡한 미국정계에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4월 8일 북베트남 수뇌부는 전 북베트남군에 '남베트남 정부의 심장 사이공을 찌를 공세를 퍼부어라!'라는 명령을 내린다.
남베트남 어쩌노 이제...
그리고 4월 14일 북베트남애들은 작전명을 '호치민 원정'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는데 호치민의 생일이었던 5월 19일까지 사이공 함락을 끝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스포라면 스포지만 5월 19일 보다 한참전에 사이공은 북베트남의 손에 떨어진다...)
동시에 이거 X되부렀다는 것을 깨달은 남베트남 대통령 '구엔 반 티우'는 포드 행정부에 '성님성님 성님 응딩이만 믿겠다'를 외치며 군사원조 증액을 요청하지만 응딩이 성님들은 바쁘신 관계로 국회에서 이를 부결시켜버렸다.
아 그전에... 북베트남 수뇌부의 사이공 공격명령이 떨어진 그 다음날 즉, 4월 9일 북베트남 원정군은 사이공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쑤안록'이란 도시에 도달하게 된다.
규모는 대충 5~6개 사단급이었는데, 오면서 남베트남군의 별다른 저항도 없었고, 얘들이 버리고간 병기를 차곡차곡 노획해서 오히려 원정 시작 시 보다 나아진 상태였다...
남베트남군은 '우리가 물러나면 모든걸 빼았겨~'라는 최후의 5분 가사가 생각났는지 간만에 전투개시 부터 붕괴되지 않고 제대로된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래봐야 허접을 넘어서서 머릿수로 계산도 안하는 지방군 그리고 전투서열 최하위의 최약체 여단급 보병사단 18 보병사단 다 합쳐서 6,000명이 전부였다...
북베트남애들은 화력을 빼고도 병력차이만으로도 5배 이상이니 이게 게임이 되겠노?
북베트남애들도 사실 지금까지 소풍온 분위기 인지라 18보병사단과 지방군 찌끄레기들의 방어선이야 하루면 붕괴시키고 사이공으로 룰루랄라 마실을 갈 예정이었는데, '레 구엔 비'준장이 이끄는 방어군은 압도적 북베트남군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이분 최대 토탈워 좀 해보신분;;;
하루나 이틀이면 끝난다는 공격이 4월 20일까지 진행되었고, 후방의 비엔호아 비행장에서 날아온 남베트남 공군기들이 간만에 신나는 폭격잔치를 벌이며 북베트남군들을 작살내고 있었다.
심지어 C-130기는 '데이지 커터'라고 불리우는 활주로 개척용 기화폭탄을 투하해 북베트남군 1개연대를 몰살시키기도 하였다.
북베트남군 어안이 벙벙잼.
하지만 다굴앞에 장사없다고 공수여단까지 지원받은 쑤안록 수비대도 여기가 한계였다.
사단장 '레 구엔 비'장군은 포로로 잡혔고, 살아남은 병사들은 개판이 된 북베트남군의 포위망을 뚫고 사이공을 향해 후퇴했다.
남베트남군은 실제로 2,000여명의 병력만 잃었고, 대부분이 소총수였는데, 북베트남군은 손실만 대여섯배에 장비손실도 있어서 사이공 진공이 늦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ㅆㅅㅌㅊ 작전이었던 '쑤안록 전투'도 사이공이 떨어지면서 역사속에 묻히게 된다.
4월 21일 쑤안록이 떨어지자 남베트남 공군의 제 2기지가 있는 '비엔 호아'가 북베트남군의 다음 목표물이 되었고, 이미 승산이 없다 판단한 '구엔 반 티우'대통령은 사임성명을 발표 후 하야한다.
그리고 북베트남군은 이날 부로 사이공으로 부터 42km 떨어진 지점에 도착해 사이공 포위망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춘계 공세'가 시작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수도가 포위당해 버렸노...
사이공을 방어할 남베트남군은 조각난 사단 5~6개를 모은 30,000여명에 불과했다.
(지방군이나 민병까지 탈탈털면 60,000명 정도였다는 말도 있다.)
반면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사이공 포위망에만 120,000명의 병력을 집결시켜 놓고 있어서 승부는 갈린 상태였다.
이제 문제는 '남베트남군이 사이공방어선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과 외국인들이 해외로 피신할 수 있느냐' 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남베트남군이 최소 몇달은 현 상황을 유지시킬 수 있고, 미군 역시 돌아올지 모른다며 긍정론을 펼쳤지만...
'고갱님 이분들은 남베트남 군입니다.'
이미 지휘를 맡을 장군들은 전부다 해외로 튀었고, 일부 책임감 강한 장군들만이 자결용 권총을 차고 국내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한편 이미 전쟁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인한 미국의 DAO(합동 군사부)는 3월 31일 부로 자국민과 그 가족들을 남베트남에서 소개시키기 시작했다.
ㅆㅅㅌㅊ 독수리 여권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4월 3일엔 2,000여명의 '미국계 전쟁고아'들을 수송기를 통해 미국으로 보내고, '뉴 라이프'작전에서는 110,000여명의 미국의 전쟁수행을 지원한 남베트남인과 소수민족들을 철수 시켰다.
게이들아 독수리 여권 꼭 가져라.
전쟁 얘기했다 난민철수 얘기했다 개판 오분전인데 이해좀 해줘라.
당시 상황이 워낙 개판인지라 나도 설명하면서 정신이 몽롱잼.
밀릴때까지 밀린 남베트남 정부는 '북베트남 동포들 내 말좀 들어보랑께요~'라면서 '파리평화조약'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고, 정전하자며 협상을 타진했지만 다 이기는 판국에 너 같으면 평화협정을 하겠냐?
처음부터 평화를 운운한 북베트남애들의 말을 믿은게 통수였던 것이었다.
'구엔 반 티우'의 후임자로 '트란 반 훙'장군이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북베트남애들은 처음엔 '티우 aut!' '그럼 대화해줌'이라더니... ㅆㅂ '트란 반 훙'행정부 보러는 '너넨 또다른 괴뢰정부임' '트란 반 훙 aut!' 이런 소릴 하고 있었다.
4월 27일 포위망을 좁혀온 북베트남군이 로켓을 발사했고, 40개월만에 처음 사이공에 떨어지는 로켓이었다.
4월 28일 '트란 반 훙' 대통령이 하야했고, '두옹 반 민'장군이 새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가 승계한 이유는 그의 친척과 측근들 중 북베트남 정치인들이 있었기에 전쟁을 마무리 할 수 있다는 기대 하나때문이었다.
4월 29일 북베트남은 미군이 빨리 철수해야 한다며 남베트남의 마지막 공항인 탄손누트 공항을 포격해 활주로를 손상시켰고, 인명손실을 야기했다.
하늘길은 완전히 막혔고, 붕타우 외항으로 향하는 바닷길도 막힘으로서 사이공을 빠져나갈길은 오직 미군의 철수 헬기만이 남게 되었다.
(이날 탄손누트 공항을 폭격한 항공기는 남베트남군 소속이었던 A-37기 4기였는데, 옛날 다낭에서 북베트남군이 노획한 기체였다.)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남지나해에 위치한 7함대는 사이공으로 부터 조빠지게 날아오는 헬기들을 수용하느라 바빴고, 상당수 기체는 남베트남 육,공군이 보유한 기체였다.
남베트남 파일럿들은 자신의 항공기에 가족들을 싣고 날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남베트남 부통령이자 공군 참모총장이었던 '구엔 카오키'의 명령에 따라 이륙가능한 남베트남 항공기들이 태국을 향해 망명길에 올랐다.
남베트남 해군도 마찬가지여서 경비정과 운용가능한 함선들이 피난민들을 싣고 7함대를 향해 떠났다.
그럼 남은사람들은 어떻게 했냐고?
방법있냐 미국대사관으로 가서 '성님성님'하며 앙망해야지...
근데 미국의 '프리퀸트 윈드'작전의 옵션4(마지막 헬기철수)자체가 본국의 키신저 외교부와 남베트남의 마틴 대사간의 손발이 안맞아 상당수 동맹국 국민(한국인 포함)과 남베트남 동조자들을 버리고 와부렀다... 이기 뭐꼬
4월 30일
오전 7시 미국 대사관을 방어하던 마지막 해병대원들이 헬기편으로 철수하면서 미국이 경험한 10,000일의 전쟁은 끝이난다.
그리고 얼마 후 북베트남군의 T-54 땅크가 남베트남 대통령궁의 철문을 박살내버리고 입성한다.
그날 오후 '두옹 반 민' 대통령은 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우리가 아는 '베트남 전쟁'은 끝이난다.
그럼 45년 미국 OSS의 개입부터 75년 미군 철수까지 약 30년을 견뎌낸 사람들은 그 후 즐겁게 살았을까?
전쟁이 끝나고도 살아남았다고? 그럼 넌 재교육캠프야!
한동안 숙청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처형된 사람만 10만명으로 추산되고, 우리도 잘 알듯 장교, 교사, 엔지니어, 공무원 등 중산층 멤버 100만여명이 재교육캠프에가서 '개조학습'을 당하셨다.
(남베트남 상류층은 어디갔냐고? 대부분 해외로 튀었다.)
마지막으로 다큐에도 나왔듯이 최후의 행정부인 '두옹 반 민'정부에는 대놓고 베트콩 첩보원이 암약해 있었고, 그전에도 남베트남 사령부에서 회의한 내용이 다음날 하노이에서 보고될 정도로 보안 누수가 심각한 상태였다.
미군과 합동작전시 남베트남군으로 부터 누수된 정보를 바탕으로 베트콩들이 대기타고 있는데 작전이 되겠노?
그래서 일부 미군들은 남베트남군과 함께 작전하느니 단독작전을 훨씬 좋아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남베트남이 준 교훈덕분에 미국이 우려했던 도미노현상은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선에서 멈췄고, 다른 반공국가들은 체제를 즉시 전환하여 70년대 계속된 공산권의 공격으로 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찌보면 훌륭한 반면교사가 되었다 할 수 있지 않겠냐 이기야.
긴글 읽어줘서 고맙다.
세줄 요약
1. 북베트남군의 간잽이 공세
2. 으아아아~ 간잽이 공격에 무너지는 남베트남 군
3. 북베트남 : 요시 그란도 시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