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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쓸 글의 주제는 한국전쟁에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흥미 위주로 쓰고자 해. 그렇다고 정보가 쓸데없는건 아닐거야.

앞으로 쓸 글의 내용은 모두 팩트다.

 

1. 북한군은 개전 초기 서울에서 사흘 머물러있었다.

 

아직까지도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이유가 제대로 밝혀진 바 없다. 주장되고 있는 설은 많은데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다음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한 유력한 설이다.

 

1) 남한 북침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게이들도 알다시피 북한은 여태 한국전쟁을 '남한의 북침'으로 일어난 전쟁으로 왜곡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3일을 머무르지 않았을까.. 하는거지.

하지만 여태까지 밝혀진 여러가지 자료나 정황 등으로 미루어볼때 이것은 맞지 않아. 북한은 계획적으로 소련과 시기까지 맞춰가며 전쟁을 준비했고 기습 남침을 가했는데,

이러한 주장을 위해 개전 초기에 3일동안이나 서울에 머물러있을 이유가 없다는거지. 만약 이 3일동안 남진했으면 주장이고 나발이고 우린 돼지새끼 사진을 걸어놨을거야.

 

 

2)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도하 장비가 도착하지 못했으므로

 

북한이 전격전을 치루는 과정에서 탱크와 같은 기갑전력과 도하 장비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고, 중국 및 소련과의 보급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3일을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하는 주장이야. 물론 당시 한강 철교는 폭파되었었지. 하지만 북한은 3일을 머무른 후에 한강에 있는 수많은 나룻배를 통해 도하하였고, 폭파되지 않은 다리로 건넜어.

사실상 한강 철교를 폭파한 것이 장애가 된것은 맞지만, 북한군의 진격 자체를 틀어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였던거지. 결국 이것도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봐야 해.

 

이와 관련하여 자세한 정보는 : http://koreanwar60.tistory.com/227

 

3) 동부전선(강원도)의 진격이 차질을 빚어 후방 기습을 대비하기 위하여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수도 방위보다 지방 방위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면 전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 하다못해 우리나라는 수도권도 사정권이야.

그런 나라에서 수도 방위군이 궤멸했는데 동부 전선이라고 다를 바 있을까? 오히려 동부 전선이 더 두드려맞고 패퇴해야 맞는 실정이겠지.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도 아니야. 오히려 북한군이 동부 전선을 공격하는데에, 남진하는데에 더 박차를 가하지 않았다고 보는게 더 적절할거 같아.

 

4) 서울을 인질 삼아 협상으로 이득을 보기 위해

 

김일성이 수도권의 남한 고위인사와 서울 시민들을 인질 삼아 협상을 벌여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었을 거라는 설도 있어. 국제적으로 북한 정권을 합법 정부로 인정받고,

옹진반도를 비롯한 수도권 일대를 할양받는 것. 게이들이 김일성이라면 꽤 괜찮은 조건이지 않아? 옹진반도는 남침하기에도 유리한 위치에 있고 말이야.

하지만 이게 사실이라 해도 말이 안되는 것이, 미국과 이승만의 결전 의지가 다분한데 이런 일을 벌일 이유가 만무하다는거지.

 

결론을 내리자면 김일성이 왜 서울에서 사흘을 머물렀는지는 밝히기가 쉽지 않고 의문이야. 통일되서 북한 극비문서 한번 뜯어보지 않는한 평생 모를거 같아.

 

 

2. 맥아더, 한반도 뿐만이 아니라 중국, 소련에 원자폭탄을 던지려하다.

 

 

 

1/5000, 그런 도박을 성공시켜 전세를 엎은 맥아더 사령관. 그 맥아더는 미국 내에서 상당한 극우파였고 맥카시와 함께 빨갱이 때려잡는데 혈안이 되있었어.

맥카시가 누군지 모르는 게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미소 냉전이 한창 절정으로 치달아오를때 미국 국회에서 빨갱이로 몰아가면서 좌익 소탕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야.

 

맥아더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지.

 

" 나는 만주의 숨통을 따라 30 ~ 50발의 원자폭탄을 줄줄이 던졋을 것이다. 그리고 50만에 달하는 중국 국부군을 압록강에 투입하고

우리의 뒤편인 동해에서 서해까지에는 60년 내지 120년 동안 효력이 유지되는 방사성 코발트를 뿌렸을 것이다. "

 

물론 맥아더가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명장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는 극우 반공사상으로 무장한 사람이었고 그걸 실행에 옮기려했어.

당시 극동공군사령관 스트라타마이어의 일기에 따르면 맥아더는 한반도와 중국 뿐만이 아니라 소련 영토에도 원자폭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하네.

하지만 이러한 배경 뒤에는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한반도를 비롯하여 중국에 원자폭탄 사용 가능성을 공언한게 있었지.

근데 트루먼이 후에 이르러서는 맥아더를 해임시키고 미 8군 사령관 리지웨이를 임명하는데, 통수가 ㅆㅅㅌㅊ인거 같아.

 

솔직히 말해서 트루먼과 맥아더의 연결 관계는 나도 잘 몰라. 트루먼으로 인해 맥아더가 저런 플랜을 세운건지, 맥아더의 플랜을 트루먼이 막은것인지..

 

하여튼 맥아더는 한국 전쟁을 발판삼아 중국까지 때려잡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그러한 플랜의 일환으로 대만 군대를 투입시키려 하고 있었어.

맥아더는 미국 내의 의문 제기에 대해서 대만의 군대는 최정예라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현실은 똥오줌이었지. 이 플랜 역시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3. 한국전쟁 당시 UN의 각종 결의의 통과 뒤에는 소련의 불참이 있었다.

 

 

보여? 소련(USSR) 대표석의 자리가 비어있는거? 미국이 북한의 불법남침에 대해 UN군 참전을 결의한 것도, 중국의 불법개입에 경제 제재와 비난 결의안을 채택한것도.

모두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었던 소련의 불참이 있었기 때문에 이뤄질 수 있었던 결과야. UN 안보리는 최소한 5개의 상임이사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해.

만약 상임이사국 소련이 UN에 참가했었다면 이것들을 모두 거부했을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렇다면 한국전쟁은 상당히 불리하게 돌아갔을지도 몰라.

 

소련 대표가 자리를 비웠을때 날치기 통과식으로 빨리 해치웠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니야.

그럼 소련 대표는 왜 불참했나? 당시 UN 상임이사국은 미국, 소련, 프랑스, 영국, 대만(지금은 중국)이었는데, UN에 중국 가입 요구를 하며

장개석(장제스, 대만 총통)이 참여하는 UN 조직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UN에 불참하게 되지.

소련 역시도 이러한 중요 시기에 왜 저런 판단미스를 냈는지 모르겠어.

 

4. 휴전 협상에 대한민국 대표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 협상 소식에 분개하며 "휴전보다 죽음을 바란다." "통일없는 휴전은 없다." 등의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지.

이러한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 대표는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고 북한과 UN이 주도적으로 협상을 마무리지었어.

덧붙여 협상은 휴전선 문제로 4개월, 포로 문제로 18개월을 끌었어. 특히 포로문제는 이승만 대통령이 협의없이 반공포로를 모두 석방함으로써 난항을 겪게되지.

 

 

3줄요약

1. 김일성 개새끼

2. 김정일 개새끼

3. 김정은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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