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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에서 인기 있는 "XX의 밤문화를 알아보자" 시리즈를 즐겨 읽은 게이라면, 혹시 에도시대를 다룬 이야기에서

고급 유녀 "오이란"이란 존재에 대한 언급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해당 글에서는  

 

"그 당시 요시와라의 고급 기생이었던 오이란(花魁 -おいらん) 들은 손님을 선택할 권리가 있었어.

즉, 오이란은 아무리 돈을 많이 낸다고 해도 처음 온 손님을 무조건 받지 않고 단골이 되어 그녀에게 많은 투자를 할 때

비로소 관계를 가졌지. 오이란의 손님들은 대부분 곧바로 오이란 좌 아래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지만 받아 주질 않기 

때문에 번거로운 절차를  밟는 것이었다고도 해. "

 

정도의 짤막한 언급이 있을 뿐이라서, 그 "번거로운 절차" 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번거로운 절차들이란 무엇이었을까?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당시 요시와라의 전경을 묘사한 그림)

 

윗 글의 설명대로 오이란花魁이란 기본적으로 당시 도쿄(당시 이름은 에도)의 유곽지대인 요시와라에서 찾을 수 있었던,

 

특별히 가격이 비싼 고급 유녀였다. 오이란이 되기 위해서는 외모도 중요했지만 또한 높은 품격과 교양이 요구되었다.

 

차도(茶道), 화도(花道, 꽃꽃이), 향도(香道, 향을 감상하거나 어떤 향인지 맞추는 것)를 비롯 노래, 악기 연주 등의 

 

가무 능력도 갖추어야 했고, 바둑이나 장기등의 놀이를 원하는 고객도 많았기에 여차하면 상대를 해 줄만한 실력을 

 

갖고 있어야 했다. 오이란을 이용하는 고객이란 주로 귀족 그 이상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견줄 만한 학문에 대한 소양 또한

 

필수적이었다. 오이란에는 당시 대중이 가지는 "재색을 겸비한 이상적 여성상"이 담겨 있었다.  

 

 

 

특히 중요하게 친 재주는 문예였다. 아름다운 문장의 편지(러브레터)를 써 그들의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오이란은 그만큼 

 

평판이 높아지기 마련이었다.

 

 

 

당시 에도시대에는 매년 발매되곤 하던 유녀평판기(遊女評判記) 란 책자가 있어, 마치 상품의 카탈로그 북처럼 

 

요시와라 유녀 대다수의 정보가 수록되었다. 이런 시중의 평판을 뚫고 3천명 가량의 모든 유녀 가운데 정상에 오른 오이란의 

 

지위와 인기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텐메이부터 칸세이까지(天明~寛政期,1781~1801) 18세기 후반 에도의 3대 스타를 그린 우키요에인 

 

카츠카와 슌코(勝川春好)의「에도 산부쿠츠이(江戸三幅対)」란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가부키 배우 이치카와 단쥬로(市川団十郎), 스모의 요코즈나 타니카제(谷風)와 

 

오우기야(扇屋)의 오이란 하나오기(花扇)가 그려져있다.

 

 

이것은 오랜 내전기를 끝내고 번영의 시대로 접어든 에도시대 일본에서 3S, 즉 희극, 스포츠, 성 산업이 얼마나 융성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승률 9할5푼의 스포츠 선수, 인기 폭발의 연극 배우와 함께 고작 '몸을 파는' 유녀가 유명 연예인인 여타 인물들과

 

동등하게 그려져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에도시대 일본의 매우 자유로운 性 인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실제로 이 오이란들은 유곽의 안 쪽에 온실 속 화초처럼 숨어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때때로 마치 여왕처럼 시종과 추종자들을 

 

이끌고 요시와라 일대를 행진하곤 했는데, 그 화려함은 오이란 도츄(花魁道中)라 하여 단연 요시와라의 명물로 꼽혔다.

 

 

 

오이란들은 마치 지금의 인기 스타와 같은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단지 가격이 비싸다는 것만으로 현대까지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릴 리 만무하다.

 

오이란이 특별한 점은 실은 가격이 아니라 오이란이란 '상품'을 판매하는 에도시대 일본의 독특한 '상술'에 있다. 

 

 

에도 요시와라의 규모는 약 2만평으로, 당시 일본 내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요시와라의 출입구는 오직 정문 하나 뿐이었으며,

 

나머지는 도랑을 파서 침입자나 도주자의 범죄행위를 원천봉쇄 했다. 그 위용은 마치 하나의 성과 같았다고 전해진다.  

 

일단 요시와라 지구에 들어가면, 마치 치외법권에 들어온 것처럼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한 손님으로서 대접받았다. 

 

사무라이는 칼을 입구에 맡겨 놓아야 했고, 귀족이라도 가마를 타고 출입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 또한 지위가 낮아도 돈만 충분하다면 

 

이 곳에선 누구나 왕처럼 대접 받았다. 

 

요시와라는 누구나 즐겁게 돈을 쓰고가는 공간이었다. 그것을 위해 요시와라는 단순한 性 이상으로 많은 볼거리도 제공했다.

그 중 하나는 "나카노쵸(仲之町)의 벚꽃" 이었다. 나카노쵸는 요시와라의 메인 스트리트였다. 

 

이 길의 벚꽃나무들은 매년 봄이되면 다른 곳에서 옮겨와 심은 것으로, 벚꽃이 지면 철거하고 새로운 볼거리를 설치했다.

 

요시와라는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일단 요시와라에 들어왔으니 오이란을 찾으러 가볼까? 

 

그런데, 앞서 말했듯 단순히 돈을 많이 낸다고 해서 오이란을 불러다 뚝딱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이란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길고 복잡한 절차를 따라야만 했다.

 

 

먼저 히키테챠야(引手茶屋)라는 곳에 들러야 된다. 요시와라를 찾은 손님은 여기서 오이란을 소개 받아야 했다.

 

지금도 일본에는 이런 가게가 더러 있지만, 性을 '접대' 하는 곳은 때때로 "찻집" 이란 간판을 달았다. 접대원은 손님에게 

 

차를 제공할 뿐이고, 별실에서 종업원과 손님이 눈이 맞아 어떤 '일'을 치루는지는 그들의 자유, 라는 게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별난 '찻집'들의 변명이었다.

 

 

 

일단 이 "찻집"에 들어서면 가게 초입에다 지갑을 맡겨야했다. 

 

요시와라는 꿈의 장소, 무릉도원과 같은 곳이기에 돈이라는 현실적인 것은 잊어달라는 것이 그들의 대답이었다. 

 

대는 이유야 어찌됐건 돈을 떼먹는 진상 손님을 퇴치하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오이란이 있는 찻집들은 규모도 커서

 

100명 이상의 종업원이 근무했다고 한다.

 

 

 

 

 

준비가 완료되면 손님은 2층에 있는 히키츠케베야(引付部屋)라고 불리는 연회장에서 소개받은 오이란을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오이란과 처음 만나게 되는 날을 초회(初会)라고 한다. 그냥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고객은 오이란을 맞이하기 

 

위해서 오이란이 귀한 손님이라도 되는 냥 연주자나 게이샤 등를 불러서 연회를 열어주어야 했다.  

 

이때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하석에 앉아, 오이란이 앉을 상석인 카미자(上座,상좌)를 비워두고 기다린다.

 

 

그렇게 하면 오이란이 들어오는데, 이때 오이란은 손님에게 말도 걸지않고 그냥 살펴보기만 한다. 

 

 

사실 오이란에게는 손님을 고를 권리가 있었다. 첫날에 오이란은 손님이 자신에게 맞는 사람인지 살펴보고 자신의 

 

손님으로서 받을지 않을지를 결정한다. 

 

고로 일게이 외모 수준으로는 첫 단계부터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는 것이다. 

 

초회가 있고 수 일이 지났다면, 손님은 다시 오이란을 찾아갈 수 있다. 

 

이렇게 오이란과의 두번째 만남을 우라(裏,뒤) 혹은 뒤를 뒤집는다(裏を返す,우라오카에스) 라고 하는데, 

 

회와 마찬가지로 연회를 열고 오이란을 기다려야 한다. 

 

 

 

 

 

이때, 오이란이 손님을 마음에 들어하면 같이 상석에 앉혀 술을 따라주었다. 하지만 두 번의 연회에도 오이란은 입을 굳게 

 

다물고 손님의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는다. 애가 탄 손님은 오이란에게 러브레터도 보내본다. 하지만 답장을 하는 것 또한 오이란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다시 정해진 시일을 기다려야만 한다.

 

 

 

오이란이 정말로 손님을 마음에 들어했다면, 오이란은 유녀옥(遊女屋,유녀집)의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손님을 초대한다. 

 

이때부터 오이란은 차가운 태도에서 일변, 연인처럼 손님을 공손하게 대접하는

 

츤데레적 면모를 선보인다. 이렇게 되면 손님은 나지미(馴染み)가 된다. 관중,소하의 재주라는 제갈량도 아닐진데

 

고작 유녀에게 삼고초려를 하였으니, 오이란이 자신의 단골손님으로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지미가 되면 이름을 불러주며 마치 부부처럼 대해준다. 

 

그리고 부부와 마찬가지로 몸을 허락하고는, 남녀간의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또한 한 가지 지켜야만 하는 규칙도 따랐는데, 나지미는 지정된 오이란 외에 다른 유녀를 탐할 수 없다는 것이 그 규칙이었다.

 

단골 이외 다른 유녀와 통하는 것은 부부의 관계를 깨고 바람을 피는 것으로 간주되어, 이 사실이 발각되면 

 

손님은 요시와라 대문에서 붙잡혀서 위자료를 지불하고, 사과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이후 출입할 때마다 유녀들로부터 조롱의 소리를 듣고, 후리소데를 입고 여장을 하거나, 상투나 얼굴에 칠을 하는 등의 

 

벌칙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이란을 따먹(?)기 위해 들여야하는 총 비용은 얼마였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이렇게 오이란과 노는 것은 매우 사치스런 놀이였다. 오이란의 나지미가 되기 위해서는

 

오이란의 화대(揚げ代), 찻집의 중개료, 연회비, 종업원에게의 팁 등 현재의 화폐 가치로 200만엔 정도가 들어갔다고 추정된다.

 

 

 

복잡한 절차와 천문학적인 비용에도 불구하고 이 고급 '상품'을 위해 기꺼이 돈을 쓰고자 하는 손님들이 넘쳐났다고 하니, 그 상술이

 

참으로 놀랍다고 할 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정도의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에도 내에서의 상류층 뿐이었고, 이들은 자연히 단순하게 돈을 내고 성욕을 '해소'하는

 

그 이상의 상품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요시와라는 이들에게 좀 더 고차원적인 유희를 제공한 것이었다. 

 

오이란이라는 이상적 여성상을 제공하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물질과 성심을 다하는 '연애의 감정' '상품화'한 것이었다. 

 

 

 

 

이쯤되면 오이란의 삶이 콧대높은 귀족 여부인의 삶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또 달랐다.

 

당시 유녀들은 빚에 의해 요시와라에 묶인 몸이었다. 설령 오이란이라 할지라도 이는 마찬가지였고, 27세가 넘어 젊음과 미모를 

 

잃는다면 퇴출 당해야만 했기에 그 안에 한 몫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유녀들 대부분의 꿈은 미우케(身請け)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즉, 나지미가 된 손님이 자신의 빚을 갚아주고, 

 

그 사람의 부인이나 애첩이 되어 하루빨리 유곽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누가 몸이나 팔던 여자를... 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런 사례는 꽤나 많았다.

 

 

 

 에도시대의 유명 작가 산토쿄덴(山東京伝,1761~1816). 

 

산토쿄덴은 에도 후카가와(深川)의 전당포집에서 태어나 우키요에 화가, 작가로서 활동하면서 담뱃가게를 경영했다.

 

그는 생애 2번 결혼했지만, 둘 다 미우케한 유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오이란 클래스는 아니었고 다만 평범한 유녀였지만...

 

쿄덴이 후배인 쿄쿠테이 바킨(曲亭馬琴)에게  남긴 말이 전해지는데, 그가 유녀 아내들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생각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유녀에도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자들이 있다. 아내가 되면, 절개를 지키면서 몸가짐을 고치는 자들도 많다.

유곽에 몸을 팔게 된 것도, 부모를 위해서 혹은 형제를 위해서 그런 것이며. 그렇지 않은 자는 드물다,

가족을 위한 마음이 있기에 자신의 몸을 수많은 손님들에게 맡기는 유녀를, 어찌 어여삐 여기지 않을수 있단 말인가"

 

쿄쿠테이 바킨의 수필 이파전모지기(伊波伝毛之記, 산토쿄덴의 전기) 中

 

 

또한 라쿠고라 불리는 만담으로도 유녀를 아내로 택한 사람의 이야기는 전해진다. 

 

 바로 코우야 타카오(紺屋高尾) 라는 이야기.

 

요시와라 제일의 유녀이자, 오이란의 필두인 5대 타카오 타유(高尾太夫)와 일개 염색장인 큐조(久蔵)의 순애를 

 

테마로 한 이야기인데,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타카오에 한 눈에 반한 큐조는 3년간 필사적으로 일해서 10량의 돈을 모아 요시와라에 간다. 이런 그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삼년간 피와 땀을 흘리면서, 모은 돈. 단 하룻밤에 저를 위해 쓰겠다고 하시니, 이 얼마나 인정이 두터운 분이신지요. 

저 같은 여자라도 아내로 맞아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이란이 제 아내가 되어주신다면, 더 열심히 일해서, 평생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꽃뱀에 물려서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은 어느시대나 있었던 모양이다. 

 

오이란은 단지 그 당시 일본 사람들의 독특한 성벽과 집요한 상술이 만들어 낸, 이색적인 단편에 불과할 것 같지만, 의외로 

 

유곽과 오이란이란 존재는 당대의 미술, 문학 등에 영향을 끼치며 에도시대의 한 축으로서 자리잡았다. 

 

 

 

오이란이 선도했던 에도시대의 화려함은 훗날 지구 반대편의 서양인들까지 사로 잡아, "쟈포니즘"의 붐을 만들어 내는 데 

 

한 몫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3줄 요약

 

1. 성진국은

2.하루 아침에

3.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글 및 사진출처

url.kr/IwR5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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