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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저장소 / 군인 / 1차대전 ] 1차 세계대전의 전설적인 영웅 "요크 상사" 이야기

 

 

이번엔 2차 세계 대전 영국의 마지막 기사라 볼린 잭 처칠을 이어서 1차 세계 대전의 영웅에 대해 소개해보자 해. 그의 이름은 알빈 컬럼 요크(Alvin Cullum York), 1차 세계 대전에 참가한 미군중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사람중 하나야. 그럼 어떻게 요크가 미군중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인물중 하나가 됬는지 알아볼까?

 

알빈 컬럼 요크(Alvin Cullum York)

 

알빈 C. 요크는 1887년 12월 13일에 미국의 테네시 주에서 11명의 형제중 3번째로 태어났어. 그의 가족은 아주 가난했고 요크는 어려서부터 대장장이로 일을 하며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지. 실제로 요크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학교(초중고대 합쳐서)란 곳을 9개월밖에 다니지 못했어. 그러다 1911년 요크의 아버지가 노짱 따라가시고 위의 두 형은 결혼을 해 가족을 떠나자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를 도와 어린 형제들을 돌보기 시작했어. 요크는 돈을 벌기위해 목수 등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29살이 되던 1917년에는 군대에 징병되는걸 거부하기까지 했지. 요크는 당시 사람을 죽이길 원하지 않았고 전쟁에 나가면 가족을 돌볼수 없었기 때문이라 나중에 전쟁이 끝난후 얘기했어. 그러나 결국 요크는 강제로 징병되었고 1917년부터 미국의 죠지아주에서 군생활을 시작했어.

 

이 사진은 독가스로 죽어가는 미군 병사들ㄷㄷ

 

요크는 징병된후 1차 세계 대전이 한창 진행되던 프랑스로 파병을 가. 그리고 여기서 사람을 죽이기 싫어해 징병을 거부했던 그의 엄청난 활약이 시작되지.

 

1918년 10월 8일 버나드 얼리 병장의 지휘 아래 요크 상병(이 당시 요크는 상병으로 진급했어)을 포함한 4명의 하사관과 13명의 이등병들은 전선을 넘어가 223고지에 있는 독일군의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란 명령을 받았어. 요크와 병사들은 적의 기관총 진지를 급습하여 1명의 사상자를 내며 기관총 진지를 탈환하고 여러명의 포로들을 잡어. 요크와 미군들이 임무가 순조롭게 풀리는줄 알았던 그때 갑자기 반대편 언덕 위에서 독일군의 기관총이 요크와 미군들을 향해 발포를 했어. 순식간에 지휘를 하던 얼리 병장을 포함한 6명의 미군이 즉사하고 3명이 부상을 입지. 요크 상병을 제외한 지휘관과 다른 하사관들이 죽거나 다쳤기 때문에 남아있는 7명의 병사들을 요크 상병이 지휘를 하게 돼.

 

맥심 기관총을 발포하는 독일군

 

요크는 남아있는 7명의 병사들에게 잡은 포로들을 감시하라 지시하고 홀로 그들에게 발포하고 있는 독일군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러 갔어. 요크가 언덕밑에 자리를 잡았을때 독일군은 남아있는 미군이 별로 없다 판단하고 6명의 독일군이 홀로 있는 요크를 향해 총검을 하고 돌격했어. 요크는 자신의 M1911 권총을 들고 자신을 향해 돌격하던 6명의 독일군을 하나하나 침착하게 쏴 죽여. 그후 요크는 독일군의 기관총 진지 주변을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자신의 권총과 대검으로 계속해서 적을 죽여나가지. 이 귀신같은 요크 상병을 본 독일군 중위는 자신의 부하들이 요크에게 계속해서 죽어나가자 결국에는 백기를 들고 요크에게 자신들이 항복할것을 요청해. 요크는 그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요크 상병과 7명의 부하들은 132명의 독일군 포로를 데리고 부대로 복귀했어.

 

독일군이 요크와 병사들에게 사용하던 맥심 기관총

 

 

요크 상병이 사용했던 M1911권총

 

요크 상병은 이 전투에서 홀로 총 32정의 기관총을 파괴하거나 노획했고, 28명의 독일군을 죽였고, 132명을 포로로 잡았어. 이 공으로 요크 상병은 병장으로 진급했고 미국은 그에게 미국 최고훈장인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고, 프랑스는 요크에게 Croix de guerre훈장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고, 이탈리아는 요크에게 War Merit Cross훈장과 몬테네그로 훈장 등을 수여했어. 요크는 여러나라로 부터 총 50여개의 훈장을 받았으며 미군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사람중 하나가 되었지.

 

 전투후 자신이 싸웠던 223고지에서 포즈를 취하는 요크 상병

  

요크가 받은 미국의 최고훈장인 명예 훈장

 

전쟁이 끝난후 요크는 영웅으로 불리며 미국으로 돌아왔고 미국 곳곳을 돌며 여러 행사에 참여했어. 그후 요크는 알빈 컬럼 요크 재단을 만들어 테네시주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을 했지. 그러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요크는 군대에 재입대 하려했지만 이미 44살인 요크를 전투병으로 받아주긴 힘들었어. 하지만 요크의 인기를 무시할수 없었던 미군은 그를 소령(병장으로 제대---> 소령으로 입대)으로 입대시키며 미국에 있는 군부대와 전국을 돌며 전쟁 기부금을 모으는 일을 시켰어. 1964년 9월 2일 요크는 자신의 고향인 테네시주에서 생을 마감했지.

 

이상 홀로 100명이 넘는 독일군을 공포에 떨게했던 요크 상병의 활약이야.

 

 

 

 

요약하면

 

알빈 컬럼 요크는

혼자서 권총과 대검만으로

독일군 28명을 노짱에게 보내고 132명을 포로로 잡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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