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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 스페인은 잉카와 아즈텍을 정복하고 신대륙의 패권을 손에 넣었다.

 

 

 

 

 

신대륙을 경영하려는 스페인

 

하지만

식민지 개발에 문제가 발생한다.

 

 

 

 

천연두 학살로 

플렌테이션 지역의 토착 노동력 공급이 고갈 되었기 때문이다.

 

외부세계로 부터 노동력 공급이 필요한 상황

 

유럽인이 접근하기 편하고(가까워서 노예사냥이 편해야하니까)

 

신대륙과 비교적 인접해 있으면서도(운송거리가 가까워야하고)

 

상당 정도 인구가 밀집된 지역(사람이 많아노동수요를 충족할수 있기때문..)에서 노동력을 충당해야하는 지역이 필요했다.

 

 

이런 조건에 충족한 지역이 서아프리카 였는데 스페인(유럽세계)이 해당지역에 대규모 인력을 노예로 끌어다 쓸지라도

 

그 지역에 대한 경제적 결과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었기때문이다. 서아프리카 지역이 유럽권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이 지역 노동력에 공백이 발생하더라도 여기서 생산되는 물건이 유럽에 영향이 크지않았다.)

 

 

 

 

 

 

아프리카의 노예노동력은 신대륙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는데 이 노예제에는 단점이 있었다.

 

노예에게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아 열심히 일할 동기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의욕이 없는 노동은 생산력이 낮기 마련..

 

따라서 일인당 이윤이 낮았다. 로마처럼 노예를 보충해줄 대규모의 시장이 있지 않다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예제가 두드러진 자본주의적 제도로서 자본주의 세계경제 초기의 전 사업 단계와 맞물리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노예를 때리면 되지않겠냐는 게이들이 있을것 같아 말하는데 노예가 재산이라 잘못하면 재산에 손실이 생기므로 

 

체벌은 손실이 가지않는 선에서 한정적이었다.)

 

 

따라서 노예들이 쓸모있는 분야는 한정적이었다. 설탕과 면화(<나중에) 였는데..

 

 

왜냐면..

 

옆 사람과 경쟁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너무 티나면 찍히거든..

 

(이렇듯 노예제는 일할 동기를 주지않아 비숙련노동에만 적합했다.

 

따라서 제도적 노예제는 숙련기술을 요구하는 산업시대에 사라지게 된다.)

 

 

 

 

 

 

사탕수수 농사짓는 노예들..

 

(이러한 사탕수수의 단일재배는 토양파괴와 기근으로 인한 식량부족으로 이어져 주민들이 사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지역에서 다 노예제가 시행된건 아니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노예에 의한 플랜테이션 대신 "엥코미엔다"(encomienda system:스페인령 아메리카에서 1503년에 제정된 공역제도. 에스파냐의 정복자

 

식민지경영자가 토지나 마을을 현지에 사는 원주민과 함께 수여받아 같이 경영하는 제도.봉건적이며 노예제처럼 노동착취적 성향이 있긴함..노예제는 아니지만

 

농노제 비슷하다.)

 

라고 하는 제도를 이용했다.

 

 

 

그럼 왜 노예제도가 이용되지 않았는가?

 

(1) 로마처럼 전쟁을 통해서 대규모로 인원이 보충받을수있는것도 아니고 무제한으로 공급할수 없음..

(로마의 경우 전쟁을 통한 공급으로 대규모로 보충이 가능했지만 평화시기에 노예공급이 줄어들게 되어 같은 노동부족문제를 겪게됨..)

 

(2)토착민들을 노예로 만들어버렸다가는 반란의 우려가 있다.

(나폴레옹시대때 아이티 반란을 생각해보자..)

 

 

 

3줄 요약

 

정복전쟁으로 인한 학살과 천연두로 토착 노동력이 줄어듬 

 

서아프리카는 노예공급지로 딱 맞아 떨어져서 흑인들이 노예로 끌려오게 되었고

 

노예제는 비숙련노동과 집단노동에 적합해서 이 조건에 맞는 사탕수수지음 

 

*노예제랑 노예랑 다르다...노예제는 제도고 노예는 노예계급에 속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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