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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바알강'을 끼고 흐르는 '오렌지강' 부근에 셀 수 없이 많은 다이아몬드가 발견되면서 남아프리카는 혼란 속으로 빠지게 돼

남아프리카 전체에 다이아몬드 광산이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이 광경을 지켜본 캐나다와 영국이 다이아몬드 광산의 지배권을 손에 넣으려고

무려 20여 년 동안 2번의 군사 살육전을 치르면서까지 경쟁하게 돼
 
남아프리카 광산은 규정에 명시된 대로 100% 가동되고 있었고 엄청난 다이아몬드가 쏟아져 나왔어

이에 다이아몬드 투자자들은 걱정을 하기 시작해

'톤 단위로 나오고 있는 많은 양의 다이아몬드가 시장에 풀려버리면 분명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폭락해버릴 거야'

결국 투자자들의 예상대로 1880년 말

다이아몬드는 가치 없는 보석 2위로 추락하고 말았으며

남아프리카 광산들은 위기에 닥치게 돼

그때 Cecil Rhodes라는 영국계 사업가가 망해가는 남아프리카 광산을 하나둘씩 사들이기 시작해

주변 사람들이 망해가는 다이아몬드 광산업을 떠나려 발버둥치고있는 가운데

그는 그저 광산을 사들일 뿐이었어

이렇게 해서 그는 '드 비어(De Beer)'라는 이름의 광산을 사들이게 돼



당시

'로스차일드'라는 패밀리의 후원을 받고 있었던 그는 다행히도 장기화되는 다이아몬드 광산 사업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어

그리고 1888년 마침내 남은 모든 광산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드 비어스(De BeerS)' 야

이 통합으로 다이아몬드 시장의 절대적 독점권에 목마르던 괴물, 거대 기업 '드 비어스'가 탄생하게 된 거지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어


1902년, Cecil Rhodes의 사망 후 '드 비어스'는 세계 다이아몬드 광산의 90%를 점유하게 되었고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드 비어스'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어

다양한 기만성으로 실제 다이아몬드의 가격인 것처럼 모든 사람들을 믿게 했지만

사실상 '드 비어스'는 수요와 공급 이론을 적용시켜 가격을 유지했던 것뿐이었어

이렇게 '드 비어스'는 다이아몬드 사업으로 엄청난 이득을 취하게 돼


하지만

1938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베리아, 북아프리카에서 엄청난 다이아몬드 광맥이 발견되고

다이아몬드 가격이 추락하면서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어

이에 '드 비어스'는 고민에 빠지게 돼

'하....다이아몬드가 이렇게 많은데 가격을 어떻게 올려야되노....'

'음..........'

'그래...이 방법을 한 번 써보자'

'여러분, 다이아몬드는 사랑의 증거입니다. 다이아몬드가 영원하듯이 사랑도 영원할 것입니다.'


'드 비어스'는 전세계적 선전 캠패인을 개발해 기막힌 마케팅으로 문제를 해결해

바로 다이아몬드를 '사랑의 증거'로 사람들을 세뇌시키는거야

작전은 성공적이었어


다이아몬드는 사랑과 낭만을 표현하는 유일한 도구라는 인식이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의 뇌리에 뿌리내린 것뿐만이 아니라

중고 보석을 사고파는 것이 창피한 것으로 인식시키는데 성공한 거야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존재'하므로 절대 되팔지 않으며, 중고 구매는 창피한 일이라 생각하게 만든 거야

고가의 새 다이아몬드를 팔기위한 아주 이상적 논거가 아닐 수가 없었지

이렇게 '드 비어스'는 뒤에서 다이아몬드로 엄청난 돈을 챙기면서

탐욕과 폭력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영원한 행복을 기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징'으로 둔갑시켜버린거야

현재 '드 비어스(De Beers)'는 여러 아프리카 정부가 광산을 국유화한 이후

광산발굴과 다이아몬드 세계시장 독점권이 없는 상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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