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들 안녕?
오늘이 70주년 광복절인데, 광복절에 맞춰서 글 한편 쓰려고 한다.
일뽕 ㅁㅈㅎ를 줘도 상관없다.
나는 역사를 중시하는 사람으로서 지나간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고
적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간 꾸준히 요청이 들어왔기도 하고,
나도 나름대로 관심이 있어서 꽤 오랜기간 공을 들여 자료를 찾아봤다.
제원부터 알아보자.
38식 소총 (Type 38 Rifle)
1-2차대전 일본군 제식소총
제작사 : 도쿄포병공창 (일본)
생산시기 : 1905년 - 1941년
사용시기 : 1906년 - 1945년+
무게 : 3370g
길이 : 1276mm (착검시 1663m)
사용탄환 : 6.5 x 50mm
장탄수 : 5발
유효사거리 : 500m
최대사거리 : 4000m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소총이다.
독립군을 토벌할 때도, 만세운동을 진압할 때도, 강제징병된 우리 조상들도 들었던 소총이다.
30식 소총 (Type 30)
38식 소총의 이전 제식소총이며, 많은 수의 부품으로 인해 구조가 복잡하고 자주 고장이 났는데 이를 개량한 소총이 38식 소총이다.
1905년 (메이지 38년)에 만들어진 소총이라 38식 소총으로 명명되었고,
제작사는 일본 국영 조병창인 도쿄포병공창과 나고야 조병창이다.
총 4개의 공창에서 제조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한국 인천에서도 제조되었다고 해.
이후 1906년 일본군 제식소총으로 채용된다.
1906년 제식채용된 이래 45년 종전 및 해방 전까지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진 모든 전쟁, 전투 및 민족 탄압행위에서 사용되었어.
1907년, 이른바 남대문 전투라고 불리우는 대한제국 군대 해산일에 대한제국군을 진압할 때에 거의 처음으로
조선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는 약 3.3kg으로, 19세기에 사용된 볼트액션 치고 상당히 가벼운데
이는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한 일본군들에 맞추느라 총신을 얇게 만들어서야.
38식 소총은 존나게 긴 소총으로도 유명한데, 당시 너무 길다는 평판을 받던 소련의 모신나강 소총과 거의 똑같아.
(모신나강 소총 128cm, 38식 소총 127cm)
착검시 40cm 정도 늘어난 166cm 인데, 사진과 같이 일본군의 키보다 큰 경우가 많았어.
애초에 당시 일본인의 평균 신장을 고려했으며,
말에 타고 있는 기병을 공격하기 위해 길이를 늘려 만들어졌어.
2차 대전에 이르러서는 백병전시 덩치 크고 팔이 긴 미군을 상대할 수 있었다고 해.
M1 개런드와의 길이 비교 모습이야.
개런드도 한국전쟁 당시 한국인이 쓰기에 너무 크고 길었다고 하는데 38식 소총은 길이가 훨씬 더 길어.
38식 소총에 사용되는 6.5 x 50mm 탄환이야.
이전 제식소총이었던 30식 소총의 제식탄환이기도 한데,
6mm로 하기엔 위력이 너무 약했고 7mm로 하기엔 반동이 너무 세서,
중간인 6.5mm로 맞추었다고 해.
다만, 전쟁이 시작되자 6.5mm도 약해서 적을 한방에 죽이기 힘들 정도였어.
하지만 반대로 위력이 약해 명중율이 좋았고, 피격시 부상의 가능성이 높아 여러 명의 병사가 발이 묶이고
후송하는데에도 많은 의무 인력이 소모되었다는 사실이 장점 아닌 장점이기도 했다.
이는 1939년, 99식 소총의 제식탄환을 7.7mm로 하는 계기가 되지.
5발이 장전되고, 클립을 걸쇠에 걸고 총탄만 좌르릇 밀어넣어서 한번에 5발을 장전해.
또는 손으로 한발씩 장전할 수도 있어.
당시 사용되었던 일본군의 탄입대의 모습이야.
위의 사진에 일본군 병사가 탄띠에 2개를 차고 있는 것을 참고하길 바란다.
한통에 약 60발 정도 들어가며, 2개를 휴대해 한번에 120발의 탄을 휴대하고 다녔다고 해.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中 에서)
유효사거리는 500m, 최대사거리 4000m까지 나온다고 한다.
초반에는 기술자들이 수제로 제작하고 총열에 크롬도금까지 되어 높은 사거리와 우수한 명중율을 보였지만
병사들이 과도하게 총기 수입을 자주 하는 바람에 강선이 닳아 오히려 총이 상해 명중률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전쟁 말기로 갈수록 품질이 저하되어 지금까지도 쓰레기라는 인식이 강한데,
이는 아래에서 더 알아보자.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中에서)
38식 소총은 일본에서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소총이며, 1941년까지 총 340만정이 제작되었는데
대다수는 만주사변 (1931년) 이후에 생산되었다고 해.
당시 대부분의 나라가 프레스 공법 등 기계를 사용해 대량생산 하는 시대였지만,
일본은 굳이 수제 절삭가공 공법을 고집해 한땀한땀 기술자들이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냈어.
덕분에 초기 물량은 품질이 좋았지만, 중일전쟁이 터지고 동남아에서도 전쟁이 벌어지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고
전쟁 중기-말기에는 비숙련 노동자 (여학생이나 아주매미들) 까지 동원해 만들어대는 바람에 품질이 개판이 되었어.
또, 수제로 제품을 만들었고 당시 일본에는 공업 규격이 정확히 정해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총끼리 미세하게 규격이 틀리거나 부품 호환이 안되는 병신같은 일이 일어나곤 했어.
(이는 1939년 프레스 공법을 도입하여 만든 99식 소총에 영향을 미친다.)
38식 소총의 부품들의 모습이야.
30식 소총에 비해 부품이 많이 줄어들었고, 단순한 구조가 된 덕분에 고장율이 높지 않았고 초중기 생산분까지는 괜찮은 성능을 보였어.
38식 소총의 리어사이트 부분이야.
초기 생산제품에는 대공용 리어사이트와 일각대가 있었는데
애초에 볼트액션 소총으로 전투기를 잡는게 말도 안되었고, 생산량에 쪼들리다 보니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이 분은 제외 (영화잖아)
또 한가지 병맛테크는 바로 유명한 국화 문양이야.
일본 천황이 하사하는 하사품이라 하여 총신에 국화문양을 새겼는데, 프레스로 찍은게 아니라 일일이 손으로 새겼어. (병신새끼들)
덕분에 안그래도 더딘 수제 소총의 제작기간이 더 늘어나버렸고, 전쟁 후기에는 생략하고 나간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전선에 나가서도 문제를 일으켰는데, 일본군 교리에 "국화 문양을 항상 청결히 유지할 것, 총기보다 국화 문양이 더 중요함" 이란 지시가 있었으며
실제로 국화문양이 지저분하면 개맞듯이 처맞았고, 너무 열심히 닦아 문양이 지워져도 개맞듯이 처맞았다고 해.
심지어는 총기 수입시 부품을 닦는 일보다 국화를 닦는 일을 더 중시했다고 하니 왜 패전했는지 알만도 하다. (병신새끼들)
종전 후 대부분의 38식 소총은 연합군에 수거되어 폐기처분 되었지만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던 것들은 국화문양이 지워졌어.
어떤 경우였는지는 아래에서 더 알아보자.
38식 소총에 착검하는 일본군 30식 대검의 모습이야.
(영화 <마이웨이> 中에서)
일본군의 총검돌격 (일명 반자이 돌격) 은 아직까지 유명한데,
초기에는 패닉에 빠진 미군들이 자주 돌파당했지만 후기에는 좋은 사격목표가 되었다고 해.
총신이 길어 백병전에 유리했겠지만은, 태평양 전선의 섬이나 동남아 정글 지대에서는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돼.
또 무게가 적게 나가는 만큼 총신이 얇고 호리호리해서 백병전을 할 경우 총신이 쉽게 깨지거나 내부 부품이 박살나는 일이 잦았지.
(영화 <로스트 메모리즈> 中에서)
어쨌든 일본군은 1-2차 세계대전과 독립군과의 전투,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이르기까지 40여 년간 38식 소총을 제식소총으로 써왔어.
하지만 역시 위력이 약한 점, 생산속도가 더디고 부품 호환이 안되는 점 등을 고려해 1939년, 99식 소총을 새롭게 개발하지만
생산량이 수요에 못미쳤고, 전선이 너무 벌어지고 해군이 궤멸되어 보급이 되지 못해 38식 소총을 종전시까지 사용하게 돼.
오히려 38식 소총의 성능이 더 좋아서 99식 소총 대신 계속 썼었다고도 한다.
97식 저격총의 모습이야.
38식 소총 중 특히 명중율이 좋은 제품을 베이스로 약간의 개량을 거쳐 97식 2.5배율 스코프를 탑재했지만, 영점조절은 불가 (..)
일본군 저격수의 경우 죽을 때에도 총기를 껴안고 죽거나, 나무 위에서 저격을 하던가 (거의 자살행위)
심지어는 반자이 돌격시 저걸 들고 같이 개돌을 했다고 한다. (..)
만주와 중국에서 일본군과 싸운 조선 독립군들 또한 일본군과의 전투과정에서 노획한 38식 소총을 많이 사용했어.
해방 후 한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서 일본군이 남기고 간 38식 소총과 99식 소총을 사용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게 공여받은 M1개런드, M1 카빈과 더불어 한국전쟁에서 38식 소총을 많이 사용했으며,
중국과 북한도 비슷한 사정으로 소련에게서 공여받은 소련제 무기들과 더불어 전쟁 초기에 많은 38식 소총을 사용했다.
전후 일본에서도 경찰과 경찰예비대에서 국화문양이 지워진 38식 소총을 제식 소총으로 사용했어.
위와 같이 전후 폐기되지 않고 일본 국내,외에서 계속 사용된 무기들은 모두 국화문양이 지워진 채 사용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38식 소총의 모습이야.
전리품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38식 소총들은 아직까지도 민간에서 판매, 유통되고 있으며
일부는 개량을 통해 사냥용이나 스포츠 라이플로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가 상태가 좋지 않고 탄환을 구하기가 어려워 비싸게 팔리지는 않아.
(6.5mm 탄환은 아직 핀란드에서 제조, 판매된다고 한다.)
다음에 리뷰할 소총은 99식 소총이야.
38식 소총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식소총이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전선의 문제로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종전 시까지 38식 소총과 같이 쓰였어.
<인용된 사진 및 설명자료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