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일러두기: 본 글은 흔히 아는 소설 삼국연의가 아닌 정사(正史)를 기준으로 작성하였으며, 본 뜻이 왜곡되지 않는 한에서 의역을 적극 활용하였음.)

 

'제갈량(승상)이 북벌을 앞두고 전략을 논의하는 도중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위연(魏延)이 승상에게 아뢰다.

 

"지금 저에게 정예병 5,000명을 내어주신다면 곧장 자오곡(子午谷)에 당도하여 북쪽으로 진군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열흘이 지나지 않아 장안(長安)에 이르러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께서는 사곡(斜谷)을 뚫고 나와 호응해주십시오. 이와 같이 한다면 한 번의 행동으로 함양(咸陽) 서쪽 지역을 평정하여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갈량은 이것을 위험한 계책이라고 판단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국지 촉서 위연전 주에서 인용된 위략 中)

 

 

안녕 일게이들아 섹스!

 

나는 어려서부터 삼국지에 관심이 많은 일게이야. 어렸을 때 만화나 소설 등을 통해서 삼국지를 접했던 게이들이 많을거야. 하지만 너희들이 봤던 그런 매체들은 전부 소설인 삼국연의를 다룬 내용이야. 삼국연의는 실제 역사가 아닌 후대의 나관중이라는 인물이 역사에 자기 입맛대로 과장과 왜곡을 섞어가면서 쓴 소설로, 사실이 아니야. 저자인 나관중은 촉한에 우호적이었던 인물이었고, 그 영향으로 연의에서는 유비가 주인공이며 촉한이 한나라의 정통성을 간직한 정의의 세력으로 묘사하고 있지.

 

물론 삼국연의는 허구이긴 하지만 본래가 역사책이 아닌 소설책으로 써진 책이야. 문학적인 관점으로 따진다면 노벨 문학상 씹어먹는 걸출한 명작이지. '복숭아 나무 아래서 의형제를 결의하다.(도원결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가다.(삼고초려)' 등 어릴 적 우리의 부랄을 떨리게 해준 멋있고 낭만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잖아? 연의가 없었으면 삼국지는 알려지지도 못했을거야.

 

그렇다면 실제 역사는 어떻게 다를까? 정식 역사로 기록된 역사서들을 통해 그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어. 이른바 '자치통감'이나 '삼국지'같은 고서들이지. 물론 삼국지는 무려 2,000년 전의 이야기로 역사서 같은 사료가 있어도 모든 사실을 파악하는데도 한계가 있어. 누락된 부분도 있으며 심지어 책마다 말이 다른 부분도 있지. 때문에 현재까지도 중국과 일본 등의 사학계에서는 삼국지에 대한 역사 연구가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어.

 

이야기가 길어졌네. 나는 이제부터 정사를 바탕으로 일게이들에게 삼국지의 핵꿀잼 이야기들을 소개해주려고 해. 그리고 오늘 들고온 소재가 바로 맨 위에 글의 도입부에 적어둔 내용인 자오곡 계책이야. 여기서는 이 삼국지 안의 한 사건을 다룰 것이므로 애초에 삼국지의 단 1%도 모르는 일부 소양없는 급식충이나 앰생 흙수저들은 이해가 힘들 수도 있어. 그럼 시작할게.

 

 

그렇다면 먼저, 자오곡 계책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할게.

 

게이들도 알다시피 제갈량은 생전에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북벌을 시도해. 촉한은 후한을 계승한 정통성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조조의 위나라를 정벌해야한다는 사명 때문이었지. 그 중 가장 위협적이었다고 평가 받는 것은 다름아닌 첫 번째, 1차 북벌이었어. 동원했던 병력도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제갈량 특유의 외교 능력으로 위나라 내부에 미리 분탕을 쳐놓아 위나라의 세 개의 도시(장안 서쪽에 위치한 안정, 천수, 남안)가 통수를 치고 제갈량에 호응하기로 했지. 그리고 무엇보다 유비 사후 촉한에 관심이 없었던 위나라에게 마른 하늘의 날벼락과 같았던 기습 공격이었기 때문이었어. 1차 북벌 이후에는 '촉한에 아직 제갈량이 있었구나' 부랄을 탁치며 철저하게 대비하게 되지. (자세한 내용은 생략할게.)

 

서기 227년, 우리의 우상이었던 유비가 형주 먹겠다고 깝치다가 뒤진지 4년 후였어. 제갈량은 황제 유선에게 출사표를 상주하고 북벌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각오를 보이며 준비를 시작해.

 

북벌을 위해서는 1차적으로 장안을 반드시 점령해야했어. 만약 장안을 점령한다면 장안 이서의 지방을 쉽게 확보할 수 있었고, 촉한의 세력은 크게 확대되어 위에 대적해볼만 했지.

 

촉한의 근거지인 한중 분지에서 장안으로 가려면 진령 산맥을 넘어가야만 했어. 진령 산맥을 뚫는 다양한 길이 있었지만, 위 지도 좌상단에 보이는 오장원 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길들이 비교적 평탄하여 군대가 기동하기에 최적이었어. 반면 산맥을 정면으로 뚫고 들어가는 자오도가 있었는데, 장안과의 직선 거리는 짧더라도 지형이 애미-리스급으로 험준했지.

 

북벌을 앞두고 제갈량은 군사 회의를 진행했어. 여기서 위연의 한가지 계책을 건의해. 자신이 직접 정예 별동대를 이끌고 자오도를 주파하여 장안을 기습 공격해 점령하고, 제갈량은 대군을 이끌고 평탄한 길로 진군! 양군이 장안 동쪽의 방어 요충지인 동관에서 합류하자는 내용이었어. 만약 이 계책이 성공한다면 뒤늦게 달려온 위의 구원군을 동관에서 물리칠 수 있었고, 장안 이서 지방을 안정적으로 촉의 세력권 안에 넣을 수 있었지. 하지만 제갈량은 자신의 판단 하에 이 건의를 기각해버려.

 

이것이 자오곡 계책인데, 역사서는 다음과 같이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하후무(夏侯楙)가 안서장군으로 임명되어 장안 수비를 맡았다. 제갈양이 남정(南鄭)에서 부하들과 전략을 논의할 때, 위연은 이렇게 말했다. "듣건대 하후무는 젊고, 조조의 사위이며 겁쟁이이고 지모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 저에게 정예 5천명과 휴대할 식량 5천 석을 주신다면, 곧장 포중(褒中)을 뚫고 나가 진령산(秦嶺山)을 따라 동쪽으로 가서 자오곡(子午谷)에 당동하여 북쪽으로 간다면 열흘이 지나지 않아 장안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후무는 저 위연이 갑자기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틀림없이 배를 타고 도주할 것입니다. 장안성 안에는 단지 어사와 경조태수만이 있을 뿐이므로, 횡문(橫門)에 있는 식량 저장 창고와 흩어지는 백성들의 곡물로 군사의 식량은 충분할 것입니다. 동쪽(위)이 병력을 모으는 데는 20일은 걸릴 것이므로 공이 사곡(斜谷)을 뚫고 나오면 반드시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한 번의 행동으로 함양(咸陽) 서쪽 지역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제갈량은 이것을 위험한 계책이라고 판단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국지 촉서 위연전 주에서 인용된 위략 中) (글 맨 위의 도입부에 쓴 글 풀버젼)

 

'위연은 항상 제갈량을 수행하여 출정하였다. 병사 1만 명을 요청하여 제갈량과는 다른길로 진출하여 동관(潼關)에서 만나 한신의 선례에 따르려고 했지만, 제갈량이 제지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삼국지 촉서 위연전 中)

 

 

▲ 중국 사극 신삼국지 짤이야. 1차 북벌의 패인이 된 마속이 스스로를 포박하여 죄인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리고 제갈량은 기산에서 참패하게 되고, 결국 1차 북벌은 대실패로 기록되지. 때문에 자오곡 계책은 삼국지 덕후들에게 아주 좋은 떡밥이 되었어. 아쉬운 마음에 '만약에 제갈량이 위연의 건의를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식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으며, '성공했다 vs 실패했다'로 파가 나뉘어 토론도 이루어지고 있지. 만약에 정답은 없겠지만 말이야.

 

그렇다면 만약 제갈량이 위연의 계책을 받아들였다면 1차 북벌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계책의 당위성을 논하기에 앞서, 이 계책을 당당히 제시했던 위연이란 인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실제로 이 계책의 성패는 목숨을 걸고 작전을 수행할 지휘관의 역량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지. (위연 일러 ㅍㅌㅊ?)

 

'위연은 자가 문장(文長)이고, 의양군(義陽郡) 사람이다. 그는 부곡(部曲)의 신분으로 유비를 수행하고 촉으로 들어가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으므로 아문장군으로 승진했다' (삼국지 촉서 위연전 中)'

 

'위연은 사졸을 잘 양성하였고 사람들을 뛰어넘는 용맹성이 있었으며,' (삼국지 촉서 위연전 中)

 

'마속이 말했다. "위문장은 용맹하고 모략이 풍부하여 전군을 지휘하여 눈앞에 있는 적을 격파해야하고 미성을 취하여 양주와 옹주를 지배하는 것은 그의 역량입니다."' (한진춘추 中)

 

 

▲ 신삼국지에 나오는 위연의 모습이야. 노무 멋있게 잘 표현했다고 본다.

 

기록에 따르면 위연이 부곡(部曲)의 신분으로 유비를 수행하였다고 해. 부곡은 군대의 편성 단위로, 관부곡과 사부곡으로 나뉘어. 여기서 사부곡은 장군 하나에 종속되어 가병(家兵)이라고도 하지. 말이 어려웠지? 즉, 위연이 유비의 친위대(사부곡) 출신으로 유비와 함께 전장을 누볐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이 유비 친위대는 대체로 평민 이하의 신분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인데, 직접 몸으로 부딪혀 싸워야하는 보직 특성상 신체적 장대함이나 무술의 능숙함 등이 그 선발 요건이 되었을거야. 이로보아 위연은 출신 신분이 낮았을 것이라는 점과 외형적인 신체의 강건함을 엿볼 수 있어.

 

위연은 유비를 수행하면서 수차례의 전공을 세워 유비의 측근직인 아문장군으로 승진했는데, 빽도없는 말단 군졸 출신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위연의 능력이 아주 특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이때부터 위연은 유비의 최측근으로서 입지를 다지며 후에 커다란 중책인 독한중(督漢中)에 임명될 발판을 다지게 되는거야. 아마도 유비는 처음부터 위연을 독한중에 임명할 생각은 없었겠지만, 일단 위연을 곁에 두다 보니 그의 특출난 무인으로서의 또다른 재능. 즉 개인의 무용을 넘어선 일군을 이끌고 다스릴만한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 같아. 더욱이 그가 촉한 서열 탑 중 하나인 장비를 제치고 독한중에 임명될 수 있었다는 것은 동료 무인들 또한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위연은 말단 군졸로 시작해서 군사통에 이른 숱한 전장 경험을 두루 갖춘 역전의 용사임을 알 수 있어. 또한 말단 군졸이 그 시작이었음은 그가 장병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보듬어주는데 도움이 되었는데, 그가 사졸을 잘 양성할 수 있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지.

 

위연은 기존에 독한중으로서 한중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때문에 그를 수비 장수 및 용맹만 믿고 있는 어리석은 자로 폄하하며 자오곡 계책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일부 논객들이 있어. 하지만 기록을 살펴보고 위와 같이 분석을 해본다면 그들의 주장이 정말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 수 있지. 그를 평가한 역사서의 기록을 보더라도, 위연은 자오곡 계책을 실행하여 험난한 행군과 기습에서의 작전 등 여러가지를 포괄하여 응용할 수 있는 스마트한 공격형 장수이며, 병사들을 이끄는 리더쉽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해.

 

 

▲ 내가 바로 아문장군 위연이다! 중국 정통 사극은 한국과 달리 퓨전 사극? 이딴거 안해서 좋아.

 

자, 위연이라는 인물이 자오곡의 계를 행하는데 있어서 그다지 부족하지 않은 인물임이 어느정도 확인 된 것 같아.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그가 발언한 계책의 당위성, 즉 성공 가능성에 대하여 논하도록 하자. 이를 위해 몇가지 쟁점들을 제기할 수 있어. '1. 위연의 별동대가 10일 만에 자오도를 주파할 수 있는가?', '2. 위연은 장안을 수비하는 하후무를 낮게 평가하였는데 근거가 있는 견해인가?', '3. 장안 함락이 과연 가능한가?', '4. 장안을 점령한다고 하더라도 지키고 유지시킬 수 있을 것인가?' 정도가 있겠지. 하나하나 짚어 보도록 하자.

 

1. 위연의 별동대가 10일 만에 자오도를 주파할 수 있는가?

 

당시 한중 분지에서 진령 산맥을 넘으려면 네 가지 길이 있었어. 바로 진창도(陳倉道), 포사도(褒斜道), 당락도( 駱道), 자오도(子午道)야. 위에서 말했듯 자오곡 계책은 제갈량의 본대는 비교적 평탄한 포사도를 통해 정면으로 진군하고, 위연은 험준한 자오도를 주파하여 장악을 빈집털이한다는 작전이야. 어디까지나 기습 작전인 만큼 신속함에 모든게 달려있었지. 위연은 작전의 성공을 위해 10일 안에 자오도를 통해 장안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어. 근거가 있는 주장일까?

 

장안까지 이어지는 자오도의 길이는 '진서 지리지'에 따르면 660리. 10리를 4킬로미터로 계산한다고 쳐도 약 264KM야. 이 정도 거리라면 평지에서는 10일 동안 충분한 거리였어. 문제는 촉한의 병사들이 평지가 아니라 험준한 산악과 계곡을 지나야하는데, 과연 얼마만큼의 속도를 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 하지만 오늘날 특전사들이 행하는 400KM 천리행군의 일정이 10일을 넘기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 거기기다가 천리행군은 높이 1,000M가 넘는 고산들만 골라서 이동하기에 환경 또한 비슷하지. 더불어 위연은 10년이라는 세월동안 한중을 지켜냈던 인물로서 이곳 지리에 밝았다는 점과 일단 그 본인부터가 군졸의 경험이 많았다는 점까지 생각해보면, 촉한의 정예병들이 전투력 손실 없이 자오도 주파가 가능하다는 현실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어.

 

 

2. 위연은 장안을 수비하는 하후무를 낮게 평가하였는데 근거가 있는 견해인가?

 

앞서 언급했던 위략에 따르면, 위연은 하후무를 굉장히 낮게 평가했어.

 

'"듣건대 하후무는 젊고, 조조의 사위이며 겁쟁이이고 지모가 없다고 합니다."' (삼국지 촉서 위연전 주에서 인용된 위략 中)

 

일반적으로 적의 장군을 폄하하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지만 자오곡 계책의 경우 위연의 역량과 더불어 그에 맞서는 하후무의 역량 또한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에 이것이 단순한 호기에 따른 근거 없는 적장 폄하라면 이는 전술상의 커다란 결함이 될 수 밖에 없을거야. 과연 하후무에 대한 위연의 평가는 적절한 것이었을까? 그 단서가 위연의 말 가운데 나와있다.

 

위략의 기록에서 위연은 '듣건대'라는 표현을 사용했어. 이로 미루어 보아 위연의 말은 세작(간첩)에 의한 정보였다고 생각해볼 수 있지. 당시 위연의 직위는 승상사마 및 양주자사였으며, 그 위치상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군사 기밀이었고, 할 수 있는 말은 제한되어 있었어. 위연의 계책이 루트와 방법 등 세부 내용이 꽤 상세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모두 그가 신뢰성있는 정보를 기초로 작전을 짰기 때문에 가능한거야. 바로 첩보를 통한 직접적인 정보 획득의 가능성이 높다고 봐. 이를 봤을 때 위연의 계책이 즉흥적으로 제안된 것이라는 일부 견해는 잘못됬다고 생각해. 이는 하후무에 대한 평가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 드라마 속 하후무의 모습. 뭔가 딱봐도 조금 좆밥처럼 생기지 않았냐?

 

'하후돈의 동생 하후렴(夏侯廉)과 둘째 아들 하후무(夏侯楙)는 스스로의 공로로 열후(列侯)에 봉해졌다.' (삼국지 위서 하후돈전 中)

위서 하후돈 전에서는 하후무가 스스로의 '공로'로 열후에 봉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어 위연의 발언과는 약간 상충되는 모습을 보여. 그러나 이 내용에는 그가 세운 공로가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은데, 적어도 군사적인 공로는 아니었다고 짐작할 수 있어. 왜냐하면 바로 아래 위략의 내용 때문이지.

 

'하후무의 자는 자림(子林)이며, 하후돈의 둘째 아들로서 문제 조비와는 어렸을 때 부터 친밀한 사이였으며, 문제가 황제에 오르자 안서장군(安西將軍)이 되어 하후연의 뒤를 이어 관중을 감독했다. 그러나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무략(武略)이 없었으며, 그가 관중에 있을 때 많은 기녀와 시첩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므로 청하공주(靑河公主)와 불화가 생기기도 했다.' (삼국지 위서 하후돈전 주에서 인용된 위략 中)

 

위략은 위나라 출신의 '어환'이 지은 역사서야. 당시 하후씨는 위나라 최고의 명문가이며, 가장 막강한 엘리트 집안이었어. 더군다나 하후무 본인부터가 황제 조비와의 친분이 있었고, 청하 공주와 혼인할 정도로 인맥이 좋았지. 위략에서는 그런 하후무를 가리켜 태어나면서부터 무력이 없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어. 이를 통해 위연의 발언은 위연 혼자만의 견해가 아님을 알 수 있으며, 세작에 의한 정보였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 코에이 삼국지에서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능력치가 안습하다.. 불쌍할 정도. ㅠㅠ

 

3. 장안 함락이 과연 가능한가?

 

장안은 많은 인구가 밀집해있는 거성(거대한 성)이야. 그러나 거성이기 때문에 소규모의 군대로는 성 안에서 농성이 불가능해. 지킬 곳이 많기 때문이지. 거기에 더해 장안성은 문이 굉장히 많아. 동서남북에 하나씩 있는게 아니라 각 방면마다 수 개의 문이 나있지. 이렇기에 더더욱 기습 공격에 취약한 구조로 되어있어. 대군이 아니라면 지키는데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지. 그렇기 때문에 위연은 하후무가 성을 버리고 떠날 것이라고 자신한거야. 분명 위연의 별동대는 별도의 공성 무기를 가지고 이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장안을 함락시킬 방법은 많아. 인간은 노오력을 하면 못하는게 없으니까. 쉽게 생각한다면 상인 행세, 야습, 수로를 통한 진입 등 방법 등이 있겠지. 기습이 성공하고, 치안이 불량하다면 야습이나 수로를 통한 갑작스러운 공격은 막아내기 불가능하므로 장안 함락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4. 장안을 점령한다고 하더라도 지키고 유지시킬 수 있을 것인가?

 

위연의 발언에도 나오듯이 위연은 장안을 함락시킨 이후, 장안성에서가 아닌 위나라의 중원에서 장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동관이라는 요새에서 장안을 방어하겠다고 했어. 이 점을 보더라도 장안은 그다지 방어적 이점이 큰 곳이 아님을 알 수 있지. 오히려 역사상 수많은 사례에서 입증할 수 있듯이 동관이 넘어가면 장안은 한시라도 버틸 수 없어. 장안 점거 후 유지 문제는 바로 촉군이 기습적으로 장안과 동관 점령에 성공한 후에, 동관을 지켜낼 수 있느냐 없느냐 달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계책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동관이 위군에 넘어간다면 장안 또한 다시 위나라에 넘어가게 될거야. 반면에 동관을 지켜낸다면 장안은 물론이고 위연이 언급한 함양 서쪽의 평정도 자연스레 이루어낼 수 있었지.

 

위연은 위나라가 병력을 결집시키는데 20일이 걸린다고 추정하였는데, 실제로 1월에 첫 보고를 접한 뒤에 명제(조예)가 장안에 이른 시간은 2월 17일로 위연의 판단과 매우 근접해.

 

지금까지 자오곡 계책의 당위성에 대해 몇가지 알아봤어. 설득이 좀 되는지 모르겠다.

 

 

▲ 코에이 삼국지에 묘사된 장안성과 동관. 중원에서 장안으로 가는 길은 무조건 동관을 지나야한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보아, 위연의 작전은 단순히 필부의 용기가 아닌 상당히 치밀하고 근거있게 준비된 것으로, 그의 예상대로 전황이 흘러갔을 가능성이 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아래는 참고하면 좋은 정사의 기록이야.

 

'당초 위나라는 촉한의 소열(유비)이 이미 죽은데다 몇 년 동안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자 촉한에 대해 거의 아무 방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돌연 제갈량이 출병한다는 소리에 조야가 모두 두려워하였다. 이에 천수군과 남안군, 안정군 등지가 모두 반기를 들어 제갈량에 호응함으로써 관중이 크게 진동하자 조정대신들이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오히려 황제가 산하들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자치통감 中)

 

자!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자. 그렇다면 승상 제갈량은 어째서 위연의 현실성있는 작전을 묵살해버린 것일까? 제갈량도 분명 나름의 생각이 있을텐데 말이야. 물론 제갈량도 자기의 생각이 있었고, 자기만의 딜레마도 가지고 있었어. 여기서부터는 2부에서 알아보도록 할게.

 

 

미안하다 게이들아 섹스. 이럴 생각 없었는데 내용이 하도 길어져서 쓰다보니까 둘로 나눌 수 밖에 없겠더라. 6시간 걸렸는데 이제 반정도 온거 같다. 그럼 다음편을 기대해줘! (글을 쓰는데 인용한 인터넷 자료 및 각종 참고 자료 등은 글이 완결되고 마지막에 몰아서 적어둘게. 그리고 제목에 꿀잼 주의 붙여서 어그로 끈 것은 역사글이라 좀 딱딱할 수 있을거 같아서 관심 좀 끌어보려고 그랬다 이기야..

 

출처

https://han.gl/zONbBu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