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초.
1715년.
'태양왕' 루이 14세가 죽는다.
강력한 왕권이라는 힘과
중앙집권을 이루기 위해 빌린 돈이라는 약점을 남기고
태양왕은 죽었어.
그의 아들 루이 15세는 당시 5살밖에 안된 어린아이였고
나이가 들면서 왕위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린 끝에
성인이 되어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왕의 의무인 통치를 주위 사람들에게 위임했고
이렇게 태양왕이 남겨준 왕권이라는 힘은 점점 약해졌지
반면에
루이 15세 대신 프랑스를 통치하던 이들은
일을 벌리는건 잘했지만
수습은 못해서
7년전쟁의 패배, 조세제도의 악화.. 등으로
프랑스의 빚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어.
나라가 개판나는동안
자랑스러운 프랑스의 국왕은 여자나 후리고 다녔지.
루이 15세는 말년이 되자 정신을 차리고
11여년간 친정을 했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그동안 나라가 개판이 되어있었어.
아버지가 구축해놓은 강력한 왕권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빚은 빚대로 쌓여서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었지.
루이 15세는 이걸 어떻게든지 수습해보려고
오스트리아와의 동맹 등을 추진하며 제대로 일을 시작하려 했는데
갑자기 왕세자가 죽어버렸어.
여기에 루이 15세는 그냥 정신줄을 놔버리고
'아프레 무아, 르 델뤼주'(내가 죽은 다음에야 될 대로 되라지...)
같은 개소리를 지껄이다가
1774년 64세의 일기로 사망해...
루이 15세의 손자.
루이 16세가 나라를 물려받으니까
나라 꼴이 "씨123발!!" 소리가 나오게 개판인거야.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도 어느정도 짐작을 하고
왕위에 오른다는 말을 듣자 아내(마리 앙투아네트) 를 껴안고 울었었는데
왕위에 앉고 보니까 상상 이상으로 개판이었어.
왕권은 이미 바닥을 쳐서 왕비가 NTR 당하는 야설이 인기리에 돌고있었고
빚은 빚대로 쌓여서 국가예산의 60%가 이자를 값는데 쓰이고 있었어.
할아버지 대에 돈으로 작위를 산 부르주아들은 기존 귀족들보다 훨씬 수탈을 심하게 했고.
빚을 값는 대신 조세권을 준 조세청부업자들은 국민들을 쥐어짜는중이었지.
이를 타파하고자 뭐라도 하려하면 귀족들이 계속 태클을 걸었고,
강력한 왕권없이는 아무래도 힘들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전쟁의 승리로 왕권을 강화하자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미국에서 일어나던 독립전쟁이 눈에 들어왔어.
금상첨화로 상대는 원쑤의 나라. 영국이었고
당시 유럽에서 도움을 요청하던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들어보니까 지원만 잘하면 이길 수 있을꺼 같아서
프랑스가 미국 독립전쟁에 참여했지.
독립전쟁이 독립군의 승리로 끝나자
루이 16세는 강화된 왕권으로 일을 추진하려 했지.
그런데 다시보니까
유럽대륙의 국가처럼 유서깊고 왕가끼리 엮여있는 나라도 아닌
신대륙의 신생국 (심지어 4년마다 왕이 바뀌는)의 승리를 지원한건
자국에서는 그냥 돈낭비 병신짓으로 비쳐지는거야.
전쟁을 치르느라 국가부채는 더욱 불어났고
국민들은 굶는게 일상이 되버렸지.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왕을 개호구 병신으로 봤는데
이전 국왕들은 여자를 후리고 다녔는데
이 병신은 와이프 한명만 보니까 '왕' 다운 카리스마가 없다고 생각했어.
심지어 왕비라는년은 오스트리아 출신 외국인인데다가
배고프다고 하니까
"밀값은 비싸니까 제가 연구한 감자전분으로 만든 빵 레시피를 알려드릴께요"
미-개 한 오스트리아 출신이어서
감자따위로 만든 빵을 먹으라고 하는 미친년이었고
배고픈 국민들이 왕실을 보니까
자기들은 배고파 죽어가는데
자신들에게서 걷어간 세금으로
(전부 조세청부원들 주머니로 들어갔지만 알게뭐야)
왕실은 사치를 부리고 있었고
(크리스마스날 공주에게 '밖에는 많은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이 있으니 따뜻한 잠자리와 음식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지만 알게뭐야)
여기에 분노한 민중은 산발적으로 봉기를 일으켰어.
루이 16세는 이들이 직접적으로 고통받는 이유인 국가부채를 어떻게 해서라도 줄이려고 귀족들에게 세금을 내라고 했으나
그들은 가볍게 씹었어.
이에 빡친 루이 16세는 귀족과 성직자, 그리고 부르주아 계층을 베르사유 궁전에 모아서 삼부회를 열고
귀족에 대한 세금부여를 골자로 한 헌법개정에 대해 토론했지.
일부러 부르주아들의 의석 수를 2배 가까이 늘려 개정안의 통과를 바란 루이 16세 였지만
헌법개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삼부회는 파탄났고
부르주아들은 따로 모여서
'국민 의회' 를 만들었어.
루이 16세는 바로 국민의회를 입법기관으로 인정했고
이에 헌법개정이 시작되었는데
이과정에서 파워게임에 밀린 국민파 귀족이던 재무대신 '네케르'가 실각했고
국왕은 혹시 모를 반란을 대비해 국경수비대를 파리로 이동시켰는데
이것이 국민들의 눈에는 왕이 자신들을 기만하는거라고 보였고
분노한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
국왕을 잡은 국민들은
왕비는 아들과의 근친상간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고 목을 잘랐고
국왕은 '반역죄'를 물어 목을 쳤지.
죽기전 루이 16세는
-짐의 피가 프랑스 국민의 행복을 강화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라는 유언을 남겼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유서에
-자식들아. 우리를 본보기로 삼아 아버지의 유언을 절대로 잊지 말았으면 한다.-
라는 글을 남기고 죽었어.
3줄요약.
1.루이 15세가 병신이었다
2.할배 똥치우다가 죽은 루이 16세
3.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실 존나 착했다
[역사/프랑스] 프랑스 혁명의 당시 상황 이야기. - 루이 14세, 루이 15세, 마리 앙투아네트 -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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