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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너바나의 앨범 Nevermind>

 

그룹 너바나(Nirvana)는 부패해가는 해비 메탈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펑크 락의 시작을 알린 그룹이다.

 

그들의 가장 유명한 앨범 Nevermind는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를 누르고 빌보드 1위를 차지한다.

 

얼터너티브 락의 붐을 일으키던 너바나의 리드보컬 커트 코베인(Kurt Donald Cobain)은 27세의 나이에 자살을 한다

 

아니, 자살했다고 알려졌다.

 

<그룹 너바나의 리드 보컬, 커트 코베인>

 

 

 

<전 말>

 

커트 코베인은 미국 워싱턴 애버딘에서 태어났다. 당시 커트의 아버지는 21살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18살이었다.

 

후에 그가 8살이 되던 해 부모는 이혼을 했고 그 바람에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4살 선물받은 기타를 가지고 뉴 웨이브와 하드코어 펑크에 심취하던 그는 1985년 훗날 너바나의 베이시스트가 된 크리스 노브셀릭을 만나게 된다.

 

결국 둘은 너바나의 모태가 되는 스티프 우디즈란 밴드를 결성하였고, 1987년 밴드 이름을 너바나로 바뀌었다.

 

이후 1991년 너바나는 메이저 레이블 게펜이란 회사와 계약을 맺었고 흥행에 흥행을 거듭한다.

 

그리고 1994년 4월 8일 그는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커트 코베인이 주검으로 발견된 당시의 신문 기사>

 

 

 

무인 경비 용역 시스템 회사의 직원 게리 스미스는 경보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집을 돌아다니던 중

 

커트 코베인 집 앞 유리문을 통해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사체가 커트 코베인임을 짐작한 그는 상사에게 보고했고,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커트의 죽음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검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커트의 머리에는 상당량의 혈액이 말라 붙어 있었고, 20구경 엽총이 다리부터 가슴에 걸쳐 있었으며

 

빈 탄약 박스 하나, 엽총 탄약이 든 가방과 현금 120달러, 마약 투여 기구, 지갑이 떨어져 있었으며

 

경찰은 지갑 속 운전면허증을 통해 사체가 커트인 것을 확인했다.

 

부검을 통해 커트 코베인의 사망 추정 시각은 4월 5일 저녁이며, 그의 혈관에서는 치사량의 3배가 넘는 헤로인이 검출되었다.

 

검찰과 경찰은 이 사건이 커트 코베인의 자살로 결론짓는다.

 

하지만 여기에 많은 의문점이 존재한다.

 

당시 이를 조사하던 사립탐정 톰 그랜트는 몇 가지 의문점을 제시한다.

 

 

 

< 의 문 점 >

 

 

1. 커트 코베인의 유서

 

<커트의 유서라고 알려진 사진>

 

첫번째 의혹은 이른바 유서로 알려진 글이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 그로인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 내용은 염두하더라도 이 유서는 두 가지 필적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처음의 필체에 비해 두번째 쓴 글이 상대적으로 크고 다른 느낌이 든다.

 

1997년 2월, 미국의 필체 반별 전문가 마틀리와 옥스퍼드 대학의 전문가 레지널드 엘튼은 미국의 TV에 나와 마지막 4줄은 다른 사람이 쓴 것이라고 감정했다.

 

그 외에 내용은 커트 코베인이 쓴 글이 맞다고 주장했다.

 

 

 

2. 치사량에 가까운 헤로인을 맞고 정리 후 방아쇠를 당길 수 있나?

 

 

커트 코베인의 사인은 자발적인 두부 총상에 의한 자살이었다.

 

하지만 커트의 혈관에서는 치사량에 3배에 해당하는 헤로인이 검출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과연 치사량에 3배에 달하는 헤로인을 주사하고도 주변을 정리하고 엽총의 방아쇠를 당길수 있는 것인가이다.

 

시애틀 과학 수사 연구소는 마약 중독자인 커트가 내성이 생겨서 가능했었다라고 증언한다.

 

하지만 헤로인은 내성이 생길 수 없는 약물로 알려저있다.

 

치사량에 3배에 가까운 약물을 투약하고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는 것 보다는

 

누군가 헤로인을 고의로 투약하여 사살한 후, 현장을 위조했다는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3. 유서를 쓴 펜과 자살에 사용된 엽총에서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

 

 

누군가 의해 지문이 지워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가 고의로 유서를 쓴 펜의 지문을 지웠다 하더라도

 

엽총에 묻은 지문을 어찌 자살한 후 지웠을 수 있었을까? 

 

이는 커트 코베인의 타살설의 가장 완벽한 증거로 꼽히며, 수사 기관의 명백하고 중요한 실수라고 주장한다.

 

 

 

4. 커트의 사망 이후, 누군가 커트의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신원불명의 누군가가, 시체가 발견되기 몇 시간 전에 꽃을 사기위해 커트의 신용카드로 계산하려 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커트의 애인 커트니 러브가 그 전에 커트의 신용카드를 정지시켰기에, 누군가가 긁으려 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누가 그 카드를 사용했는지 알 수 없다.

 

 

 

5. 커트 코베인의 친구 브래드 바넷의 증언 - 목숨이 위태롭다.

 

 

커트의 친구였었던 브래드 바넷은 사망 날짜로 추정되는 5일의 하루 전날인 4월 4일 시애틀에서 만나,

 

커트가 사체로 발견된 방까지 같이 갔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날 커트가 바넷에게 위협을 느껴본 적 있어? 내 목숨이 위태롭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6. 커트니 러브와 친분관계를 맺은 검사관

 

 

위와 같은 의혹들을 무시하고, 수석 검사관 니콜라스 하트션 박사는 "이보다 더 확실한 자살 사건은 본 적이 없다"고 언론에 증언했다.

 

하지만 이 검사관은 커트니가 커트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근거로 커트의 자살사건에는 그의 부인 커트니 러브도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7. 5만 달러를 줄테니 커트를 죽여달라.

 

 

<멘터스의 리드 싱어 앨튼 호크의 사진>

 

멘터스라는 그룹의 리드 싱어 앨튼 호크는 커트가 죽기 3개월 전 코트니로부터 "남편의 머리를 날려주면 5만 달러를 주겠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 당시 앨튼은 레코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는데 이런 제의를 받았다고 말했으며

 

다음 해 3월 레코드 가게 주인인 세퍼디언은 앨튼 호크를 급히 찾는 커트니의 전화를 받았다고 언론에 말했으며

 

멘터스 투어를 위해 알바를 쉬었다고 말하자 

 

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라고 소리를 지른뒤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1997년 앨튼 호크는 열차에 치어 사망했는데

 

아무도 목격한 이가 없다.

 

다만 그가 죽기 2일 전, 멘터스의 공연장에서 앨튼 호크의 친구인 드루 갤러거에게 생명이 위험하다, 가짜 운전면허증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커트 코베인을 죽인 사람을 알고 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8. 커트의 이혼 서류

 

 

만약 커트니가 커트를 살해했다면, 혹은 타살의 주동자였다면, 그 동기는 커트의 담당 변호사를 통해 유추 할 수 있다.

 

커트와 커트니 부부의 담당 변호사였던 캐롤의 증언에 따르면, 커트 코베인은 "곧 이혼할 생각이니 커트니를 제외한 내용의 유언장을 써달라"

 

라고 이야기 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커트니 러브 또한 캐롤에게 변호사를 요청하며 '재산 분할에 관한 혼전계약'을 취소 할 수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이 증언은 사립탐정이자 이 사건을 자비로 추적한 톰 그랜트가 녹음하였다)

 

'혼전 계약'에 따르면 이혼할 경우 커트니는 커트의 막대한 재산에는 손을 댈 수 없고 약간의 위자료만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커트가 사망하자 수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유산을 상속받았다.

 

 

 

9. 커트니 러브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하와이에서 결혼한 커트 코베인과 커트니 러브>

 

1994년 6월, 커트니 러브의 밴드 Hole의 베이시스트였던 크리슨 파프가 자신의 집 욕조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파프와 커트니의 관계가 굉장히 안좋았으며 마약에 찌들어 있던 당시 커트니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녀는

 

이사 바로 전날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녀의 사망 현장인 욕조 옆에는 주사기와 마약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이에 대해 톰 그랜트는 타살이 확실하며, 새 출발을 위해 이삿짐까지 싸놓은 사람이 자살할 이유가 없다 라고 주장했으며

 

이 사망 사건 현장 수사관은 커트의 사망 검사관이자 그녀와 내연 관계를 맺은

 

니콜라스 하트션이었다.

 

 

 

 

기존의 해비 메탈의 종언을 선언하고 얼터너티브 락의 세계로 인도한 희대의 라커, 커트 코베인의 죽음에 대해 왈가왈부 말이 많지만

 

아직도 검경은 재수사를 할 용의가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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