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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한국사 ] 잊지말아야할 우리역사 - 조선의 개국과 동시에 학살당한 고려 왕씨 대학살 사건 -

 ( + 위화도 회군 평가 )

 

 

태조왕건, 475년 뒤에 후손들이 끔살당하는 꼴을 봤으면 피꺼솟했을 듯.

 

사실 개성 왕씨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한 게 없어.

당나라에서 건너온 절도사가 선조라는 썰이 있고

당나라황제 숙종이 조상이라는 기록이 있는가하면

고구려가 망하고 내려온 유민들로부터 비롯됬다는 말도 있는데

셋다 믿을만한 증거는 없다. 

 

 

 

호옹이 홍건적 떄려잡고 왜구 몰살시키고 못하는게 없노?

 

아무튼 왕씨 고려는 원나라가 망조들고 슬슬 끝물타게되는데

육지에서는 홍건적, 바다에서는 왜구가 분탕쳐대서 나라꼴이 개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분탕종자들을 모두 몰살시켜버린 씹먼치킨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이성계야. 이때만해도 그는 망해가는 고려를 구원할 구세주로 보였다. 

 

최영장군까지도 이성계의 군사재능을 크게 칭찬하고 신뢰했다.

요동정벌을 불가하다고 반대했던 이성계에게 총책임을 맡길 정도였으니까.

1388년, 일단 까라면 까래서 정벌군 이끌고 요동으로 향하기는 했는데.

이성계가 판단하기에 요동을 친다는 건 있을 수 없었던 일이였다.

 

 

 

 

 

요동정벌하기 1년 전 세력판도.

 

원이 도망쳐서 북원이 되고 만리장성 이남은 명이 장악했다.

그런데 만주에 나하추라는 북원 장수가 남아 계속 저항해서 명에게는 골칫거리였지.

북원좀 칠라니까 만주에서 빈집털이하니 얼마나 짜증나겠노?

 

요동정벌 1년전인 1387년, 주원장은 20만 대군을 동원해서 나하추를 피떡갈비로 만들어버렸다.

 

 

 

몽골성님덜 유쾌하게 사시네. 

 

'북원있잖아, 충분히 요동정벌가능함. 위화도회군 합리화는 ㅁㅈㅎ' 하는 애들 있을까봐 적어둘게

북원도 위화도회군 불과 몇달 전인 1388년 3월에 명의 장군 남옥이 이끄는 15만 대군에게 수도까지 쳐발려서

포로 8만명이 북경으로 끌려왔고 칸이었던 토구스 테무르는 도주하다가 살해된다.

사실상 북원이라는 세력자체가 공중분해 된 상황이야.

 

 

 

북방정벌하고 베트남합병하고 소말리아까지 함대보내고 못하는게 없노?

 

명은 북방에 30만이나 알박아놨어. 게다가 당시 명나라 북방방어 총책임자가 후에 영락제가 되는 주체임.ㄲㄲ

역대 명황제 중 군사재능이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받는 놈이야.

 

이건 걍 이성계입장에서는 북벌정벌이 폭탄조끼입고 불속에 뛰어드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정벌할려면 그나마 북원버티던 2~30년 전에 했어야지. 북원이 거의 소멸상태에서 도움 받을 수도 없던 사정이였지. 

 

 

 

"청와대로 가자!"

 

장수들은 승산없는 전쟁에 불만이 터졌고 마침 내린 폭우에 압록강까지 범람하자 병사들까지 지쳐버렸다.

고심한 끝에 이성계가 선택한 것은 회군이였고.

위화도에서 개경까지 400km 거리를 10일만에 주파하는 위엄을 보인다.

독소전 당시 하인츠 구데리안의 진격속도가 1일 42km였으니까 국뽕맞아도 될 듯.

 

 

왕씨새끼들 씨발새끼들이에요!

 

개경에 입성한 이성계는 한때 동지였던 최영을 노짱있는 곳으로 보내버렸어.

사실상 정몽주 정도를 빼면 이성계를 막을 만한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 있어도 말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잖아.

그래서 이성계는 고려에 희망이 없으니 뒤엎자던 신진사대부와 손잡는다.

 

 

 

조선이 개국함 ㅎㅎ

 

결국 당연한 수순으로 왕씨의 천하가 망하고 이씨의 천하가 열렸어.

하루아침에 왕족, 양반으로 엣헴하던 개성 왕씨들은 망국의 유민이 되버렸지.

그럼 왕씨들은 어떻게 됬을까?

 

으따 왕씨들 놔뒀다가 뭔일 저지를지 모르니 모두 없애버리장께요?

 

고려 멸망직후 왕씨들에 대한 처우는 우리의 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에 잘 나와있다.

태조3년 4월(1394년)

4월15일 : 윤방경이 왕씨들을 잡아 강화 나루에 던졌다.

4월20일 : 중앙과 지방에 명령하여 왕씨의 자손을 대대적으로 수색하여 이들을 모두 목 베었다.

4월26일 : 무릇 왕씨의 성을 가진 사람은 비록 고려 왕조의 후손이 아니여도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하였다.

 

거의 아포칼립토찍고 쪽빠리 창씨개명에 버금가는 수준이야. 

왕씨말살정책이라해도 될 듯.

 

 

 

 

남효온 얼굴 ㅍㅌㅊ

 

태조 한참 뒤인 성종때 사람인 남효온도 왕씨에 대한 학살을 기록했어.

 

조정이 왕씨들을 강화도와 거제도에서 서인으로 살게 해주겠다고 속여 배에 태운 뒤 바다 한 가운데서 배를 가라앉혀 수장시켰다.

태조 3년 갑술 여름에 왕씨들을 바다 가운데 빠트려 죽이고 왕씨의 남은 겨레도 찾아죽였다.

 

-추강냉화(秋江冷話)-

 

 

 

 

 

왕씨들의 대수난이 겨우 끝나 건 세종때 와서였다.

그나마 그냥 대놓고 죽이지는 않는 정도였고 관직에 임용될 수 없었지.

고려가 망한지 400년만인 정조때 가서야 겨우 족보를 정리할 수 있었고.

460년만인 흥선대원군 때 가서야 관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왕건은 그래도 견훤, 신라왕족들 포용했는데

이성계는 명나라에서 심하다고 깔 정도로 왕씨의 씨를 말려놨다.

하지만 덕분에 조선왕조는 500년 동안 왕씨들의 반란걱정없이 꿀잼

 

 

 

4줄 요약

1. 이성계가 권력잡고 조선개국함

2. 그런데 전대 왕족 왕씨가 거슬림.

3. 그래서 이성계가 학살하고 탄압해서 씨를 말림.

4. 흥선대원군때까지 왕씨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지않음.

 

 

=============

 

하지만 쫄보 이성계가 생각했던것 만큼 고려조정이 무능하지는 않았다.

 

당시 중국인 명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국방을 구축하려고 노력했고, 고려 입장에서는 명나라 본토 정벌이 아닌 고구려의 옛 지역이였던 요동 정벌을 해서 과거 한반도의 자랑스러운 지도를 완성하려고 했다. 웃긴 것은 조선 건국이후 이성계 조차 요동 정벌을 다시 하려고 했었다.

 

고려 조정에서도 꽤나 현실성 있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명나라 주둔군이 10만대군이라는 것은 사실상 허구에 가깝다. 중국인들의 군사 수 뻥튀기는 삼국지만 보아도 허구란 사실을 모두 알 것 이다.

 

고대 국가중에 백성이 넉넉하게 살았던 시대가 사실 몇 없다. 그러는 와중에 고려조정에서 북방정벌을 하기로 마음을먹고 군사를 소집했는데 5만 이상의 군사가 모였다. 이것은 고려 중앙정부가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군사와는 차원이 달라서 고려는 귀족세력이 자체 사병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 나중에 태종이 양반들 사병을 보유하면 왕권에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사병제도를 폐지한다. 

 

귀족세력의 자체 사병들은 일본의 전국시대처럼 나름대로 훈련 관리를 해서 훈련된 병사들이였다.

이러한 병사 5만명을 이성계라는 당대 유능한 장수에게 맡겼던 것이다. 한마디로 명 입장에서도 고려의 기습 선제공격에서부터 요동 방어가 결코 쉽지 않다.

 

고려조정은 알다싶이 외교능력도 우수하고 국제정세를 잘 판단하여 무역도 잘하고 475년이나 왕조를 유지한 왕조국가였다. 아무리 국가가 망하기전에 막장이였다고 해도, 고려 조정에서 판단하고 5만명의 군사들이 모였다는것은 그렇게 망한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려 지도부 또한 우리 역사이고 우리 선조들이다.

475년 역사를 유지한 왕조가 멍청했다고 섣불리 이야기할 수 없다.

 

더구나 중국처럼 땅덩어리가 큰 편도 아니고 인구도 많은것도 아니였던 점도 참고해야한다.

이성계 집단의 자체적인 판단으로 고려조정이 내린 의사결정을 어기고 회군하여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이 옳은 행위는 아니다.

 

이성계의 입장이 명백히 나오는데 고려 조정에서는 -> 중국 요동지역을 공격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성계는 고려를 공격할지 , 중국을 공격할지 망설이다가 고려를 공격했다.

이 위화도 회군이라는 시점에서 그 시작부터 중국의 속국으로 진행되는 것이며 국가에 대한 배신이였다.

 

명령을 위반한 군인으로써는 명백한 반역이고, 이성계의 반란군과 고려 군인간의 내전이 발생한 한민족끼리 전쟁을 다시 일으켜 상대방을 살인행위 이기도 하다.

 

고려 정권을 다시 무신정권처럼 군대로 쥐어잡은 이성계는 결국 왕위에 오르기위해 왕씨 성을 가진 고려 왕족 대다수를 숙청하였다. 이 또한 엄청난 살인행위였다.

 

이성계가 성공한 쿠데타로 조선을 개국하고 물론 이후에 조선시대에 맞이하여 훈민정음창제 등 우수한 업적들도 분명히 생겼지만,

 

다른 종교를 배척하고 불교인과 다른 신을 믿는 종교인을 죽이고 탄압하였으며 유교사회를 정착시키고 여성을 억압하고 자국민을 노예로 만들어 500년간 양반의 하수인으로 자국민이 자국민을 부려먹는 악폐습을 실시하였다.

 

이외에도 상업과 도로와 국가 인프라도 사실상 현 선진국 G12 국가에 비교해보면 열악하였고, 좁게보면 중국과 일본보다도 뒤쳐졌다.

 

그 결과 임진년 왜란을 포함하여 2번의 왜란에서 조선의 무능함때문에 백성들이 엄청나게 죽었으며, 중국의 도움과 이순신이 없었다면 국가가 소멸할 위기까지 갔다. 이러한 무능함으로 2번의 피로쓴 교훈을 망각하고 사대주의를 고수하다가 병자호란 발발로 또 다시 전쟁으로 백성이 죽어나갔다.

 

조선의 왕씨 학살 결과 고려 왕실과 촌수가 너무 멀어서 그야말로 성만 왕씨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수많은 개성 왕씨 일족이 거의 사라졌다. 어쨌든 이 학살로 인해 개성 왕씨를 비롯한 구 고려 왕실 세력은 완전히 몰락하면서 다시는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위치를 가지지 못했고 현대에도 왕씨는 김씨나 이씨, 박씨와 달리 화교 취급 안 받으면 다행인 정도로 한국에서 소수 성씨집단으로 전락했다.

 

좋은 쪽도 나쁜쪽도 있는 조선의 평가를 첨언하였다.

 

원글 및 출처

url.kr/iepc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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