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AZAT2

 

 

Aleksandr Vasil'evich Kolchak 알렉산드로 콜챠크 제독이야

 

게이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지?

이 아저씨는 제정 러시아의 해군 제독으로, 볼셰비키 혁명 이후 적백내전에서

백군의 지도자로 활동한 사람이야.

 

 

 

적백내전이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이후부터,

기존 러시아의 보수 우익 세력과 반 볼셰비키 세력이 백군으로,

볼셰비키 및 좌익 세력이 적군으로 갈라져 싸웠던 내전이야. 소련을 성립시키는 전쟁이야.

 

 

 

콜챠크 제독은 1874년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태어났어.

 

1905년 러일전쟁이 벌어졌을때는 러시아 함대에 종군해서 싸웠고,

 

1차세계대전이 일어났을때도 종군해 사령관까지 지낸 베테랑이야

 

1차대전때는 북해와 흑해 모두에서 복무했어.

 

작전입안자, 책임자는 반드시 병사들과 함께 전선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실천했기 때문에 병사들에게 인기가 많았어.

 

그러나 무리한 전쟁으로 러시아에는 암운이 드리우고 있었으니...

 

 

 

 1917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러시아에는 임시정부가 수립돼.

 

이 임시정부는 이후 10월 혁명(볼셰비키 쿠데타)으로 무너질 때까지 전쟁을 이끈 비교적 중도 지향의 정부야.

 

그 해 6월에 콜챠크 제독은 전선임무에서 돌아와 임시정부 회의에 참석하게 돼.

 

당시 임시정부는 곤란한 상황에 쳐해있었어.

 

혁명은 일어났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던거야.

 

혁명으로 인해 안그래도 무너져가던 러시아군의 기강은 땅에 떨어졌고, 곳곳에서 항명사태가 일어났어

 

사병들은 장교에게 평등과 자유를 요구했고,

 

혁명을 지지하지 않는 장교가 총살당하고, 탈주병이 속출했어

 

 

 

닥터 지바고 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거야. 

러시아 군대가 혁명이후 얼마나 난장판이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야.

영상에서 2분 쯤에 나오는 젊은 장교는, 독일군이 불과 몇십마일 앞에 와있다고, 전투를 독려하다가 총살당해

 

 

 

이런 상황이니, 전쟁이 제대로 되었을리가 없지..

 

최전선은 완전히 독일군에 의해 무너져내리고 있었어

 

많은 우익계열의 사람들과 군 관계자들은 임시정부에 하루빨리 군의 기강을 확립할 것을 주문하는데,

 

콜챠크도 마찬가지로 군의 재조직과 기강확립을 주장했어. 특히 군에서 사형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어

 

(당시 러시아 군은 혁명이후로 사형제도를 폐지했어. 전시의 견지로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

 

 

 

흑해함대 총사령관의 회고록에 의하면 콜챠크는

 

'병사들의 폭력으로부터 자기 참모장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는 전선 사령관직을 유지하고 있다' 

 

라고 이야기해.

 

 

 

당시 임시정부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자는 케렌스키였는데, 케렌스키는 콜챠크를 두려워했어

 

콜챠크는 당시 항상 병사들을 생각하는 전쟁영웅이었고,

 

일반 병사들은 물론이고 민중도 콜챠크를 좋아했어

 

케렌스키는 이런 인물을 가까이 둬서 권력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거지.

 

케렌스키는 콜챠크를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미국으로 보내려고 했어.

 

이때문에 콜챠크는 사실상 숙청된, 힘이 없는 상태에 이르러.

 

 (러시아 임시정부)

 

그런데 당시 임시정부로서는, 언제라도 반혁명을 일으킬지 모르는 우익계열과,

 

자칫 손아귀를 벗어나 폭주할 수 있는 좌익계열을 모두 컨트롤해야 하는 상황이었어.

 

전쟁과 생활고로 나라 전체가 흥분해 있는 상황에, 그게 제대로 될리가 없지.

 

1917년 여름 코로닐로프 사건(반혁명 사건)을 계기로 임시정부 내 우익계열이 무너지면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임시정부의 균형도 무너져.

 

결국 10월,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들의 쿠데타로 인해 러시아는 완전히 공산화되고 말아..

 

 

 

 

10월 혁명이 일어났을때, 콜챠크 제독은 만주의 하얼빈에 있었어.

 

그때까지 콜챠크는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콜챠크가 이 비보를 접한뒤에 처음 한 행동은, 영국에게 영국군에 들어가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제안하는거였어

 

영국은 콜챠크에게 연합국의 지원을 받는 백군 시베리아 임시정부에 들어가 레닌과 싸울 것을 제의했고, 콜챠크는 받아들여

 

그후 쿠데타를 거쳐 시베리아 임시정부는 무너지고 새로운 옴스크 정부가 들어서게 되는데, 이때 콜챠크가 지도자로 뽑히게 돼.

 

제정 러시아 시대의 제독이었다는 정통성이 한 요인이었겠지

 

 

 

이렇게 해서 콜챠크는 백군의 옴스크 정부의 지도자가 돼. 사실상 백군 전체의 지도자가 된거지.

 

 

 

옴스크의 위치

 

 

옴스크는 러시아의 중앙,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도시야.

 

 

 

 

적백내전에서 백군의 리즈시절이야.

 

 

저 밑에 벨로루시 - 우크라이나 부근은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는게 보일거야.

 

1918년부터는 국제연합군이 볼셰비키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개입하기 시작해.

 

 

 

저 지도 오른쪽 상단에 보면 콜챠크의 이름도 보이지?

 

이렇듯 1918년까지만 해도 백군은 처음에는 승리하는 듯 보였으나, 1919년부터는 적군의 대반격이 시작돼.

 

옴스크에 기반을 두고 있던 콜챠크의 백군은 소모전을 반복하며 일부 전투에서는 적군을 몰아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전선은 패배일색으로 바뀌게 돼. 

 

이 일련의 패배에는 유명한 소련군 장군인 투하체프스키가 공헌했지

 

 

이 시기에는 이미 적군의 증원이 백군을 능가했고,

 

옴스크를 기점으로 볼셰비키의 숨통을 죄던 콜챠크도 곧 기점 옴스크까지 패퇴하게 돼. 

 

 

 

 

적백내전의 초창기에는 열렬하게 지원해주던 국제 연합군도 이 시기에는 콜챠크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지.

 

연합군은 처음부터 체코군단의 무사귀환에 더 관심이 많았던거야. 

 

패색이 점점 짙어지는 백군에게 도박을 걸 나라는 소련의 탄생을 특히 두려워하던 일본정도가 유일했어.

 

 

 

 

결국 옴스크 정부의 운도 다해서, 콜챠크 휘하의 백군은 옴스크를 떠나. 1919년 11월 14일의 일이야.

 

 

그런데 최초에는 백군을 위해 싸웠던 체코군단,

이 체코군단이 배신한다.

 

체코군단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적백내전의 시초를 화려하게 연 군단이야.

 

1차세계대전에서 러시아가 이탈하기 전, 오스트리아로부터 체코의 독립을 염원했던 체코인들은

 

스스로 의용군을 결성, 연합군에 합류해서 독일-오스트리아와 싸워.

 

전쟁 말기에는 이 숫자가 무려 2개 사단 병력으로 불어서 동부전선에서 싸우고 있었는데

 

러시아가 독일과 평화조약을 맺고 전장에서 이탈하면서

 

이 체코 군단은 독일-오스트리아와 계속 싸우기 위해 자신들을 서부전선으로 돌려달라고 요청하게 되지.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된 체코군단을 군대조직조차 제대로 복구하지 못한 적군은 두려워했는데,

결국 체코군단은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백군의 편에 붙어 적군과 싸우게 돼.

 

적백내전 초기 체코군단의 활약은 대단했어.

 

그러나 물론, 체코군단의 목적은, 반볼셰비키가 아니라 자신들의 서유럽으로의 전선복귀였지.

 

 

현재의 체코/슬로바키아

 

1918년 겨울,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부터는 체코군단도 이미 자신들의 목적을 잃은 상태였어.

이미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민족국가의 수립이 결의될 것이었고,

 

체코군단 입장에서는 목적이 성취된 이상 굳이 이 시베리아의 혹한속에서 남의 나라 내전을 치뤄줄 생각은 없었던거야.

 

불만이 쌓인 그들은 결국 백군의 뒤통수를 치기에 이르지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옴스크를 떠났던 콜챠크 제독 일행은 체코 군단에게 습격당하고,

적군의 치하에 들어선 이르쿠츠크로 수송되고 말아...

 

그곳에서 콜챠크는 총살로서 한많은 생애를 마치게 돼...

 

가장 유력한 말로는, 그의 시체는 총살당한 뒤에 강의 얼음구멍을 통해 물속으로 던져넣어졌다고 해.

 

1920년 2월 7일의 일이야.

 

이르쿠츠크에서 처형되는 콜챠크 제독

 

 

처형의 순간에도 콜챠크는 의연해서,

 

심지어 적군 장교들마저도 경의를 표했다고 해. (소련 시기에는 의도적으로 폄하되었지만)

 

 

 

당시 미국 제독이던 Newton A. McCully는 콜챠크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어.

 

 중간 정도의 체격에, 검고 날카로운 눈, 결연한 인상이다.

단호하고, 노련하며, 너그러운 성품을 가졌으며,

조국 러시아를 향한 격렬한 애국심을 가진 남자다

 

 

최근에는 영화로도 나왔지. '제독의 연인' 

이 영화 본 일게이들 많을거야.

 

사실 이 영화는 언뜻 보기엔 로맨스 영화인것 같지만

실상은 알렉산드로 콜챠크 제독의 일대기를 그의 연인의 눈으로 바라본 영화야.

 

로맨스라든가.. 아니면 전쟁영화로서의 박진감을 기대했던 게이라면

차라리 보지 않는걸 추천한다..

그래도 난 개인적으로 재밌게 봤어

 

 

 

 

 

 

 

 

글이 길어졌네.

 

 

1줄 요약

 

1. 콜챠크는 볼셰비키에 맞선 애국자였다

 

 

url

https://han.gl/ySWGs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