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의 일화에 관해 써보려고 한다.
일단 시대는 박정희 대통령이 통치하던 1960년대로 거슬러가.
이때, 제주도민들은 만성적인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어.
왜냐하면, 섬이란 지역에선 물관리를 잘 못하면 언제나 물이 부족했거든.
무엇보다, 가장 영향을 주는 요소가 화산섬이란 지역의 특성이지.
너희들도 알겠지만 제주도는 해저화산폭발로 생겨난 현무암질의 지형이야.
때문에 물을 저장하려 시도를 할때마다 이놈의 현무암스끼가 물을 다 흡수해버렸어.
정말 골칫거리였지..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1966년 6월 20일 제주도를 방문하고, 제주도 수자원개발 기본구상도를 직접그려, 한라산 고지대 수원 개발 방안을 지시하면서 그 악몽은 거짓과도 같이 사라지기 시작했어.
박정희 대통령은 5.16이후 소위 폭력배들로 구성된 ''국토 건설단''을 투입해 어승생댐을 건설하기 시작해.
이 저수지를 개발하는 데에는 한국전력, 농림부, 건설부등이 참여했고 원래 목적인 전력생산으로 이용하려 했지만 어승생의 수량은 10만톤이였고, 전력생산에
필요한 실질수량은 30만톤이였기 때문에 전력생산은 어렵게되지.
그리고 원래 5개년 계획으로 건설됬을 이 저수지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2년으로 단축돼.
기적이 시작된거야.
1967년 착공되기 시작한 어승생 수자원 개발 사업은 당시 돈으로 10억 2000만 원이라는 막대한 공사비가 투입되어 구십구곡과 어승생에서 자연유하식 수로를 통
해 2만 7000여미터제곱 규모의 저수지로 용수를 끌어들여 48.17km에 이르는 송수관과 16개 지선을 통해 다시 공급하는 계획이였어.
자연유하식이란 보강 할 수 있는 약액(시멘트 풀이 대표적이야.)을 지반에 타설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하고 지반이 개량되는 방식이야.
그리고 2년이 지난 1969년, 공사가 완료되지.
하지만 여기서 큰 문제가 터져버려. 어승생 저수지에 10만톤의 물을 채운결과 바닥 한 쪽의 붕괴로 인해 저수된 물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어.
제주도는 알다시피 현무암질이야. 따라서 논농사를 지을수도 없었고, 댐건설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지.
건설진들과 여러 관계자들은 낙담하게 돼.
이런 악조건 속에서 사람들은 도통 해결책을 찾지 못했지.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았어.
박대통령은 서울대학교와 동경대학교 지질학자를 초청해 자문을 구하게 돼.
그리고 끊임없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한 결과, 해결책을 찾게되지.
해결책은 암반층까지 바닥을 3m 더 파낸 후, 철근콘크리트로 보강해 밑바닥에 코팅비닐을 깔아. 이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물은 빠져나올 수가 없는거지.
그때 당시론 정말 획기적인 해결책이였어.
해결책을 반영한 결과, 어승생댐은 드디어 완공되었지. 이로써 제주도민들의 물걱정은 해소돼.
유일하게 제주도민들에게 안전한 물을 공급해주는 저수지이기도 한 어승생저수지는 제주시 해안동 어승생오름에 위치하고 있어.
그리고 1일평균 1만 3천톤의 용수를 공급하던 저수지는 현재 지하수개발로 8개의 마을과 60여개 농장에 약 8000톤을 추가 공급하고 있지.
짧은 글,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마워.
3줄 요약.
1. 제주도민들은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음
2. 박정희 대통령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섬.
3. 수천년간 이어져오던 물부족이 해결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