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깨달음을 얻고 난 어느 날, 한 제사장이 명상에 잠겨 있는 붓다를 발견한다.
그가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알아차린 제사장이 물었다.
“당신은 천왕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신입니까?” “아니오.”
“인간입니까?” “아니오.”
“도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깨달은 자” 라고 붓다가 답변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승려들이 탁발할 때는 조심스럽게 가라고 말씀하셨다. 발우도 조심해야 하고 음식을 올리는 사람들에게도 조심해야 한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안 된다. 자기의 발우만, 가는 길만 보고 탁발을 해야 한다.
붓다가 북인도의 조그마한 도시를 방문했을 때다. 수만은 수행자들과 성직자 가운데, 누가 진리를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미심쩍고 의심스럽습니다.라고 그곳 사람들이 붓다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붓다는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그 말을 따르지 마십시오. 대대로 전승되어 왔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해서, 경전에 씌어 있다고 해서. 유명한 사람이 말했다고 해서, 스승이 말했다고 해서 그 말을 따르지 마십시오. 스스로 깨닫고 알게 되면, 그때에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라고 답했다.
<타 종교의 믿음과 다른 불교의 믿음>
“불교의 믿음은 의사와 의술, 그가 만든 의약과 제자 그것을 환자들이 믿고 존경하고
의지하는 것처럼, 부처님과 그 가르침 그리고 승려의 모임이라는 세 가지 보배를 불교인들이 믿고 의지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믿음이다.“라고 우 소다나 스님은 말한다. 한국의 일묵 스님께서는 “불교의 말하는 믿음은 일반적인 믿음과 다르다. 어떤 면이 다르냐면 부처님은 와서 보라고 하였다. 와서 믿으라고 하지 않았다. 불교의 믿음은 항상 지혜가 바탕이 되어있다. 단순히 지혜 없이 맹목적인 믿음은 맹신이다.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불교의 믿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붓다의 죽음이 가까워오자 제자들이 슬피 울었다.
“우리는 이제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가르침에 의지하라.”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 중에 개와 사자의 비유가 있다.
개는 돌을 던지는 사람을 제쳐두고 날아온 돌을 물고 공격한다.
그 개에게 괴로움은 끝나지 않았다.
괴로움 자체를 없애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반면 사자는 활이나 총은 신경 쓰지 않는다.
쏘는 사람을 공격한다.
괴로움을 없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야 한다.
어느 날 의혹에 가득 찬 제자 한 명이 붓다에게 물었다.
세상은 영원합니까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우주는 유한합니까.
우주는 유한하지 않습니까
영혼은 육체와 같습니까
영혼은 육체와 같지 않습니까
붓다는 제자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어느 사냥꾼이 숲에서 독화살을 맞고
이화살이 어디에 날아왔으며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이며
화살 끝에 묻은 독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그는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다.
그것들을 따지기 전에 먼저 화살을 뽑아내야 한다.
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불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3대 종교로써, 천주교와 기독교와는 확실히 다르다. 천주교와 기독교는 성향이 비슷하나, 불교는 전혀 다른 성향이다. 근본 자체가 서양문화이며 우리나라는 동양문화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은 동양문화이며 불교는 1900년대 이전까지 대한민국 조선 고려 신라까지 나라와 함께 한 종교였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생명을 살상하지 않지만 부득이하게 그 규율을 깨는 경우가 있다. 바로 나라가 위험할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인데, 우리나라 불교는 '호국 불교'라고 일컫는다. 나라가 위험에 빠질 시 스님도 나라를 위해서 싸운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으며 지금까지도 스님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최근 늘어나는 교회에 비례해 절은 많이 줄어들거나 불교를 믿는 신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 국민이 기독교(개신교)를 믿을 정도로 교회가 번성하였다.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점차 우리 불교가 흔들리는 것은 아닐지. 무섭다.
교회에서는 직접적으로 "우리 교회 오면 좋아. 예수님이 최고야." 라고 '전도'를 한다. 이러한 '전도'문화는 기독교 내에서 최고로 삼고 있다. 결국 교회가 주가 되고 본인이 객이 된다.
불교의 '전도'문화는 다르다. " 직접 와서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판단하십시오." 절이 객이 되고 본인이 주가 된다. 본인에 선택에 맏기는 것이다. 어떤 종교가 좋다고 말할 수 없다. 글을 쓰는 본인조차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불교에서 수계를 받았다. 자신이 그 종교를 믿을 때 마음이 편안하다고 느껴지면 그만인 것이다. 동국대학교를 다니며 대학 1학년 때 내가 만든 < 불교와 인간 > - 리포트를 정리하면서 블로그에 글을 게시해본다.
전쟁에서 수천 명의 사람을
수천 번 정복했다 하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정복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전사이다.
- 법 구 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