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카미카제 패배의 원인.
미국은 이미 1940년초부터 일명 VT신관이라고 알려진 근접신관(Radio Proximty Fuzes)을
개발하기 시작해서 1942년 1월에 신뢰도 50%가 넘는 물건을 생산에 성공하고 1943년도 부터 본격보급하기 시작,
초기 가미가제의 성공률만 30~40%대를 기록하게 만들고 나머지는 ㅆㅎㅌㅊ를 기록하게 만들어서
대전후반에는 가미카제가 아니라 가미가제 할애비가 와도 답이없는 상황이었다는게 정설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은잘 모르는 근접신관이란걸 잠시 살펴보려고 한다.
(참고로 요즘도 쓰인다. 물론 진공관은 없어졌지만)
<대표적인 근접신관인 5인치용 MK53 단면도, 건전지와 콘덴서, 진공관이 보인다>
근접신관이란건 기존의 포탄이 목표에 직접명중하게 해서 폭발하는 방식인 압력신관이나
거리와 시간을 입력해서 폭발시키는 지연신관이 아닌 말 그대로 목표가 근처에 있으면 폭발하게
만드는 기폭장치로 이런걸 만들려면 당연히 전자기술이 들어가야 하고 최초연구는 1920년대부터 하기 시작한
물건이야.
하지만 1920년대 당시 기술로는 애미리스하게 어려워서 1940년대에 와서야 실질적인 개발이 가능하게된
물건인데 재미있는건 양키군이 원래 테크노에 모에가 종특인 군대로 1941년도에 생산한 신뢰도 50%쯤의 신관으로는
만족을 못해서 그해 여름내내 수만발의 시험발사를 해서 일명 AVC(Automatic Volume Control)라는것까지
개발해서 매우 신뢰도 높은 근접신관을 1943년도에 생산하는데 성공하는 끈질김을 보여줫다는거지
이 AVC 라는건 근접신관이 전파를 쏘고 쏜 전파의 반사파를 판별하여 작약을 폭파시키는
레이더의 원리로 작동되는 물건인데 이게 바다에서 사용하다보면 해면 반사파인지 적기에서 반사되서
돌아오는 전파인지 알수가 없거덩
그래서 해면반사파와 적기반사파의 오인을 막기위해서 개발된 물건인데 이걸 개발하려면
일단 쏴봐야 연구 피드백을 얻고 신뢰도 높은 근접신관을 제작 할 수 있게 되는거임.
근데 양키가 후덜덜한 이유는 1943년도에 개발이 완료될때까지 소비한
포탄이 수만발인데 이 AVC 가 장착될 근접신관에는 건전지와 진공관이 들어가야
한다는 거지
1940년대 당시에 건전지와 진공관은 매우 비싼 소비재로서 지금으로 따지면
포탄 한발에 스마트폰이 하나씩 달려있는거라 보면 됨. 당시 가격이 700달러가 넘었으니까,
요즘 가격으로 따지면 아마 소형차 한대값은 하지 않을까 한다.
<mk53의 실절개 사진, 몸체중간에 건전지, 상단에 소형진공관이 보인다>
이렇게 돈지랄을 해서 미국은 매우 신뢰도 높은 근접신관을 개발하고 생산하는데 미해군용 3인치, 5인치, 6인치용을 만들고
이것도 모자라서 육군용도 만들고 더 나아가 영국해군용, 영국육군용까지 만들어주는 돈지랄의 위엄을 만방에 과시해
생산량은 더 ㅎㄷㄷ 한데 미해군 전용으로만 4,568,630 발을 생산하고 미육군용으로도
무려 15,038,385 발을 생산한다. (미국 공업력 ㄱㅆㅅㅌㅊ)
짤짤이용 영국해군과 육군용은 언급하기 귀찮으니 직접찾아보공
일본은 1944년도에 가미가제를 시작했지만 미해군이 실전에 VT 신관을 배치하여
사용하기 시작한건 1943년부터인데 미해군도 이노무 신관 가격이 오지게 비싸서 본격적으로 전투에
사용하기 시작한건 미칠듯한 생산력으로 가격을 낮추기 시작한 1943년말쯤되서야
맘놓고 쏴재낄수 있었어.
이때쯤 부터 일본 함재기들이 미해군 함대에 기스조차 내기 힘들어지는 고난의 시기가 시작되고
미해군은 그들의 테크노 모에 종특을 살려서 VT 신관도 모잘라서 포가 초보적인 컴퓨터와 레이더로
사격통제가 되는 레이더 시스템인 SG RADAR 라는걸 만들어 배치하고 일본군을 끔살시키기 시작하지.
이 근접신관과 SG 레이더가 왜 개꿀잼이냐면 일본군이 야밤에 미해군을 기습 해도
VT 신관이라 대충 우겨넣고 갈기면 기존 지연신관처럼 거리와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발사하는 포탄보다 명중률이 ㄱㅆㅅㅌㅊ가 되거든. 레이더로 사격통제되는 포야 뭐
야간이든 주간이든 상관없는 꾸준한 명중률을 보여주시고,
여담이지만 미육군은 이 비싼 근접신관을 독일전에서 대인용으로 사용하시는 위엄까지
보여주시고, 일설에는 이때 미육군이 사용한 근접신관을 독일군이 줍줍해서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는 카더라가 존재한다는데, 이 얘기는 신뢰 할 만한 출처를 찾지를 못해서
그냥 카더라라고 섰다.
3줄 요약
1. 일본 카미가제 시전
2. 미국 근접신관 개발
3. 카미가제 끔살, 카미가제 할애비가 와도 답이 없는 상황